2025년 4월 1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 선착순 »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린 시절과 군대시절 벌이나 얼차려 기합을 받았을 때가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선착순 벌을 받다 보면, 어떤 때에는 « 그냥 배째라 »하고는 드러눕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선착순을 시킨 선생님이나, 군대의 고참을 속으로 몇 번을 죽이고 살리기도 하고, ‘개, 소, 닭’같은 짐승으로 변화시켰다가 인간으로 변화시키기를 수 차례나 반복했다. 남들보다 빨리 달려서 더 이상 선착순 벌을 받지 않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선착순 벌받다가 “배째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을 떠올리면, “건강해지고 싶소?” 라는 주님의 질문에 “예, 낫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물이 움직일 때 자기를 넣어 주지 않는 사람을 원망하고,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시기하고 탓하는 말을 하는 오늘 복음의 병자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38년간이나 병이 낫기를 기다려 왔으나, 이제 희망이라고는 사라지고 남은 것이라고는 그저 덤덤한 절망뿐이었던 사람, 그 사람에게 맨 먼저, “건강해지고 싶소?” 라는 말씀으로 예수께서는 대화를 시작하셨다. 그러나 그에게는 예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 선착순 논리는 사람에게 경쟁심, 원망, 적의를 품게 만들었다.
1등만 인정해주는 ‘절망의 못’ 베짜타는 이스라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 이 땅에도 '선착순 논리'가 만연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학교에서는 학생끼리, 사회 직장에서는 동료들끼리, 기업체는 기업체끼리, 참으로 많은 '선착순 논리'들이 활개치고 있다. 선착순을 조장하는 사회, 선착순의 논리가 잘못되었음에도 고치려고 하지 않는 사회, 그 사회를 향해서, 오늘 예수께서는 베짜타 연못의 병자를 치유하는 사건을 통해 반기를 드셨다. 병든 사람이 병든 질서를 만들고, 병든 질서가 다시 병든 사람을 만들어내던,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예수께서는 단칼에 끊어버리셨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만큼 힘이 없어서, 기적을 일으키지 못해서 선착순 논리를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건강하고 싶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소?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소? 참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오? ” 라는 물음에 자기 변명, 자기 합리화, 체념 이런 것은 필요 없다. 그저, “원합니다”라는 대답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저 현재 상태에 마지 못해 만족해 하거나, 아니면 그저 체념하고 절망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에게 변화란 있을 수 없다. 건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굴뚝같을 때,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면, 일어나 당신의 들것을 들고 걸어가시오”라고 말이다. 마치 우리에게 “너는 너의 뜻을 모아서 변화되기를 갈망하고, 그렇게 변화되도록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나의 은총이 너와 함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백날 천날 손발이 다 닳도록 빌어도, 내가 로또를 구입하지 않으면, 그런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 팔짱만 끼고 게으르게 늘어져 있으면, 결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나서, 자신의 들 것을 들고 걸어가야만 은총은 주어진다. 세상의 선착순 논리에 그저 고개 끄덕이면서 ‘그럴 수 밖에 더 있나? 내가 무슨 힘이 있나?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행여나 모난 돌이 정 맞는데, 나 아니고 다른 누군가가 하겠지’하는 생각만 하면, 결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서자, 걸어가자. 그리고 주님께 청하자. 도와달라고. 그러면 반드시 주님은 도와 주실 것이다.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