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2999호 2016.06.19 18면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서로 용서하고 하나 되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마태 18,19ㄴ-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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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죽고 나서 이스라엘은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갈라집니다. 솔로몬이 말년에 저지른 죄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의 나라를 갈라놓으셨기 때문입니다(1열왕 11,11). 이렇게 갈라진 두 나라는 얼마 가지 못해서 멸망하고 마는데, 북 왕국은 기원전 722년경 아시리아에, 남 왕국은 587년경 바빌론에 각각 패망합니다. 열왕기 하권은 이스라엘에 닥친 불운을 두고 임금들과 백성들이 하느님의 율법을 어기고, 하느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분열과 멸망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그런 상황을 다른 민족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 임금들과 백성들의 탓으로 돌린다는 사실입니다.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하느님의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했다고 생각하며, 다시금 하느님의 법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런 자신들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으로 외적인 나라가 아니라 마음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더욱 큰 힘을 쏟았습니다. 오늘 1독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이 잘 녹아나 있습니다.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신명 30,2-3)

이스라엘의 이런 태도는 오늘날 분단의 상황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분단의 원인을 외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우리들의 문제로 돌리는 것. 그래서 두 번 다시는 같은 문제를 겪지 않도록 깨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늘 2독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상태에 놓여 있는 우리가 일치를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마음가짐을 알려줍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31-32)

상대방의 탓도 크지만 어쩔 수 없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되었음을 인정하고,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원한, 격분, 분노, 폭언, 중상 등을 벗어버릴 때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잘못한 부분은 지적하고 서로 따지며 모든 것을 제자리로 되돌리려는 태도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두 번 다시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잘못을 따져 모든 것을 바로 잡는다 하더라도 서로 간의 원한을 풀어내지 못하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독서의 바오로는 한국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먼저 하느님의 마음가짐으로 용서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서로 같은 민족, 같은 형제라는 마음으로 하나가 될 때까지 무수하게 용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물론, 용서는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우리들에게 항상 기도할 것을 권고합니다.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항상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서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함께 모여 우리 민족이 서로 화해를 이루고 일치를 이루게 될 것을 기도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으면, 주님의 은총과 도움으로 용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서로 용서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 기도할 때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우리 민족을 하나로 이어주실 것입니다.

그토록 견고하게 쌓여있던 동구권의 문이 열리고 서로 간의 교류가 이루어진 것도 최근의 일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던 것이 가능해지는 것은 언제나 순식간입니다. 우리 민족의 통일도 이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통일의 순간을 잘 맞이하기 위해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할 마음가짐은 분노와 악의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신앙인들부터 먼저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며 지혜롭게 준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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