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2015-11-29 [제2971호, 18면] 

[복음생각] 깨어 준비하자 / 염철호 신부

대림 제1주일(루카 21,25-28.34-36)
 

대림시기는 예수님의 탄생과 재림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독서와 복음 말씀은 주로 기다림과 준비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그런데 ‘기다림’이라는 말을 들으면 종종 현재와 미래를 서로 가른 뒤, 미래라는 장소에는 영원한 생명, 새 하늘과 새 땅, 하느님 나라 등 이상적인 단어를 모조리 집어넣고, 현재라는 장소에는 어려움, 갈등, 부족함, 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것을 죄다 넣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현재의 어려움과 고난, 십자가를 잘 이겨내면, 미래에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현재를 영원한 것과 아무런 상관없는 것처럼 여기게 만듭니다. 하지만 종말은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곧, 지금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2000년 전 처음 이 땅에 육을 취하여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마련해 주신, 그래서 이미 당신을 믿는 이들이 누리는 구원의 삶을 완성해 주시러 오실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지, 현재의 상황을 전복시켜 줄 새로운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을 통해 이미 가까이 와 있는 하느님 나라가 온전히 이 땅 위에 내리는 것입니다. 곧, 우리는 세례를 통해 이미 누리게 된 영원한 생명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미 그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을 온전히 누리는 것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종말에 가서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여전히 죄악이 판을 치고 있고, 우리 역시 그 죄스러움을 온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 곧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항상 깨어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그 영원한 생명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죄로 가득 차 있다하더라도, 우리에게 죄스러운 성향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지금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보고 있지 못하다면, 그래서 그런 것들은 미래에 가서나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은 결코 영원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것이라면 과거에도, 오늘도, 미래에도 항상 있어야 하는 것, 항상 간직하고 있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 이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이미 살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과연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세상의 고통과 어려움에 짓눌려 자신이 누리고 있는, 하느님께 받은 그 영원한 생명을 잊고 사십니까? 물론 세상 속에 찌들어 살다 보니, 영원에 대한 관심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런저런 죄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린 상태에 놓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의 삶이 영원을 살 수 없는 삶이라고 말하며, 영원은 단지 미래라는 그릇에만 담겨 있다고 말해 버린다면, 우리가 기다리는 영원한 생명은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공허한 낱말에 불과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며, 주님의 재림을 깨어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영원한 생명을 깨어 기다린다는 것이란 바로 지금 이 순간 그 영원한 생명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되새기도록 합시다. 그러면서 영원한 생명을 지니신 분께서 우리와 똑같은 몸을 취하여 우리 가운데 머무시게 된 사건, 곧 주님 탄생 사건을 기억하는 성탄절을 깨어서 잘 준비하도록 합시다.



염철호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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