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2996호 2016.05.29. 18면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예수님의 몸과 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루카 9,11ㄴ-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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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임금들을 물리치고 롯과 가나안 임금들의 소유들을 되찾아오자, 소돔 임금은 오늘날 예루살렘 동쪽 편에 있는 임금 골짜기까지 마중 나옵니다. 당시 살렘이라고 불리던 이곳 예루살렘의 임금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던 사제였던 멜키체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빌어줍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멜키체덱, 곧 하느님께 바칩니다. 또한 자신이 되찾아온 모든 것을 소돔 임금에게 돌려줍니다.(창세 14,17-24)

이 장면은 매일같이 거행되는 미사 성제를 연상시켜 줍니다. 히브리서는 멜키체덱이 바로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는 예형이었음을 보여주는데,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 자신의 몸과 피를 하느님께 제물로 봉헌하시고, 그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들에게 내어주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분이십니다.(히브 7,1-28)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그 몸과 피를 받아 모시면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이웃에게 내어놓음으로써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동참합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야말로 멜키체덱의 품위를 이어받은 정의의 임금이며 평화의 임금,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멜키체덱을 넘어서는 분으로 멜키체덱의 품위를 완성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의 축복은 아브라함이 멜키체덱에게서 얻은 축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사실, 예수님 이전에도 멜키체덱의 품위를 이어받은 이가 있었는데, 다윗 임금입니다. 다윗은 헤브론에 있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그곳에 하느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하였습니다.(2사무 5,6-12; 2사무 7,1-3) 사울이 아니라 멜키체덱의 정통성을 이어받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화답송의 시편 110장은 다윗을 두고 멜키체덱의 품위를 이어받은 영원한 사제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윗을 두고 하는 이 노래가 실은 예수님을 향한 노래로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제도 아니었고, 마지막까지 성전도 짓지 못했지만 성전 자체이신 예수님(묵시 21,22)은 당신의 몸과 피를 봉헌하신 대사제요,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모든 제사를 완성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멜키체덱의 품위를 완성하신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며, 예수님의 파스카 희생 제사가 우리 각자의 삶을 통하여 오늘날에도 계속 구현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직접 사람들에게 먹을 것, 곧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주라고 명하십니다.(루카 9,13)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누어주는 삶을 살라고 명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모든 것 가운데 십 분의 일을 내어놓고, 자신의 것이 아닌, 소돔 임금의 소유를 모두 소돔 임금에게 돌려준 것처럼, 우리가 가진 것은 내어놓고,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은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삶을 살라고 권고하십니다. 멜키체덱의 품위를 완성하신 예수님의 모습, 신앙의 선조인 아브라함의 모습을 지금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 자리에서 다시금 구현함으로써 다른 이들도 신앙의 길로 초대하라고 명하십니다.

매일같이 미사성제를 거행하고, 매년 파스카 축제를 지내는데도, 특별히 그리스도 성체와 성혈 축일을 제정해서 당신의 몸과 피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참되고 살아 있는 음식임을 기억하는 것은 결국 그분의 몸과 피가 우리들을 통하여 이 세상에 더욱 분명히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면서, 자신의 것을 나누지 않는다면, 남의 것을 마치 내 것인 양 소유하고 살아간다면, 예수님의 희생 제사는 나와 전혀 무관한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음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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