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2995호 2016.05.22 4면 

[사회교리 아카데미] 제거되어야 할 불평등

대한민국은 ‘헬(hell)조선’?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옛 말
부모 경제력 따라 자녀들 시작 달라
민주주의 파괴시키는 ‘경제적 불평등’
인간 존엄성·노동 가치도 영향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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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리고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말 중에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라는 게 있다. 한편에서의 부의 대물림과 반대편에서의 빈곤의 대물림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경제력과 직업 등으로 자신의 수저가 금수저인지 은수저인지 아니면 흙수저인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허투루 넘겨버릴 수 없는 이유는 최근에 나온 사회 통계들이 젊은이들의 이러한 절망적 직관들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저소득층의 ‘빈곤 탈출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고, 우리 사회의 경제적 상위 1% 또는 10%의 자산 비율 중에 상속과 증여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주식 배당금이나 은행 이자 등의 자본 소득의 90%를 상위 10%의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통계들이 가리키는 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부자는 열심히 일한 사람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니 나의 사회적 계급과 지위는 나의 능력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주어지는 수저에 달린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신화가 되어버렸고,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이 맨주먹으로 시작했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흘러간 옛 노래가 되어버렸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 사회를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고 표현한다. 지옥(hell)과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조선의 합성어이다. 안타깝지만 젊은이들 표현대로, ‘흙수저 물고 나온 당신에겐 헬조선’이다.

50년 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헌장」 역시 이러한 현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인류가 이토록 풍요로운 재화와 능력과 경제력을 누려 본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 인구의 상당수는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고 있으며 무수한 사람들이 완전 문맹에 시달리고 있다.”(「사목헌장」 4항) 또한 “경제생활의 발전이 합리적으로 또 인간답게 지도되고 조정되기만 하면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바로 이 시대에, 때로는 더 자주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또 어떤 곳에서는 힘없는 사람들의 사회적 조건을 퇴보시키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거대한 군중은 아직도 생활필수품이 전혀 없는데, 어떤 사람들은 저개발 지역에서도 호화롭게 살며 재화를 낭비하고 있다. 사치와 빈곤이 함께 있다.” (「사목헌장」 63항)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정직이나 성실이라는 가치, 노동과 근검의 가치, 그리고 공동체 윤리와 공동체 의식이 건강하게 자리 잡기는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 전체를 파괴한다. 경제적 영역에서의 소수의 기득권 세력은 자신의 영향력을 경제적 영역 안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하게 된다. 특히나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치, 곧 공적 영역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칙은 1원 1표의 주식회사의 의사 결정 형태에 스며들게 되고, 민주주의는 급속도로 퇴행하거나 파괴된다. 더욱 심각하게는 경제 영역의 소수 독점의 생각과 사고방식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럼으로써 소수 독점이 정당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이렇게 경제적 불평등은 단순히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비롯한 사회 전체를 파괴하는 심각한 문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를 파괴하는 윤리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경제적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가톨릭교회 사회교리의 핵심적 원리인 정의와 평등을 실현시키는 길(「사목헌장」 66항 참조)이기도 하다.

이동화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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