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3003호 2016.07.17 18면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좋은 몫을 택한 마리아

연중 제16주일(루카 10,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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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사가가 전하는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를 읽다 보면 종종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마르타는 열심히 일하고, 마리아는 앉아서 놀고만 있었는데 왜 마르타만 야단맞을까?

아마도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 익숙하기에 이런 질문이 나오는 듯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독자들이 등장인물 가운데 누구를 옳게 생각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대개 이야기 흐름을 통해서 누가 옳은지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하느님이나 예수님이 직접 알려주시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의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마르타가 너무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말씀하시며, 마리아가 진정 좋은 몫을 선택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바탕으로 오늘 복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르타의 문제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집에 모신 인물은 마리아가 아니라 마르타입니다. 성경에서 주님을 맞아들여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마르타는 주님을 초대만 해 놓고서 가까이 다가가 그분의 말씀을 듣는데 집중하지 않고, 온갖 시중드는 일에 “분주”합니다. 분주하다는 표현은 마르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암시해 줍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1독서의 아브라함도 마르타처럼 주님을 맞아들인 뒤 주님과 그분 천사들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르타와 달리 아브라함은 주님 곁에 머물며, 주님께 시중을 듭니다. 그리고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며 공손히 답합니다. 1독서에서 주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은 자기 천막 안에서 나오지 않던 사라였습니다.

성경의 관심에서 벗어나 개인적 관점에서 ‘말씀만 듣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마리아가 정말 잘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적 의문으로 복음의 초점을 흐려 놓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개미 마르타와 베짱이 마리아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과 가까운 자리에 머물며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이와 관련해 루카 8,15는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다”고 말합니다. 주님 곁에서 그분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간직하는 이들은 인내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실제 복음사가는 주님의 말씀을 듣다가 마르타의 비난을 받은 마리아가 실제 말씀을 들은 뒤 어떤 행동을 하였는지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마리아가 좋은 몫, 곧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며, 간직한 인물임을 밝혀줍니다. 복음서가 말하지는 않지만 마리아는 분명 말씀을 간직한 뒤 인내로 열매를 맺게 되었을 것입니다. 마르타처럼 자신의 관심 때문에 분주한 삶을 살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오늘 제2독서의 바오로 말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그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의 일꾼들입니다. 그래서 매일 같이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과 더불어 ‘삶이라는 각자의 제단’ 위에서 하느님과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들이지만 종종 자신의 근심 걱정 때문에 갖가지 일에 부산을 떨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기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에 빠져 분주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오늘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무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며, 갖가지 일로 분주하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그 열매를 맺는 것. 마리아는 참으로 좋은 몫을 택했다.”


염철호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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