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3005호 2016.07.31 5면 

[사회교리 아카데미] 그리스도인의 휴식과 여가

하느님 거룩함 드러내며 쉬어야

성경에서 휴식은 ‘해방’ 뜻해
 자아성찰하며 부족함 채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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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조영남


휴가철이다. 선진국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노동시간이 긴 우리나라에서 휴가철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입시준비로 여름 방학을 빼앗겨버린 청소년에게도, 학자금 마련으로 여름 방학을 내놓아야 하는 이 땅의 청년에게도 여름은 고마운 계절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여름휴가는 쉬는 날이 아니라 무언가를 또 해야 하는 날이 되어버렸다. 어딘가에 가야 하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휴식과 여가의 시간이 이제 시간과 공간과 상품을 소비해야 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고 또 앞으로 당분간 벗어나기 어려운 불황의 상황이니, 경제학자로서는 이렇게라도 소비가 진작되는 것이 다행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효과적이고도 윤리적으로도 올바른 방법은 가난한 이들의 소득을 높여서, 특히 노동소득을 높여서 사회 전체의 경기를 부양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어쨌거나 오늘날 휴가는 소비사회의 또 다른 한 모습이고, 쉬는 시간이 아니라 또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시간으로 바뀐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휴식과 여가를 달리 보아야 하고, 또 달리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무엇보다 먼저 휴식을 해방으로 보도록 인도한다. 쉰다는 것은 종살이에서 해방된 민족(신명기 15,15)에게 가능한 일이다. 해방된 민족에게 휴식은 자신만을 위한 배타적 권리가 아니라, 다른 노동자와 가축들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사회적인 것(탈출 23,12)이며 땅을 비롯한 우주만물이 하느님께서 이루신 창조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생태적인 회복이다. 우리의 휴가가 이웃과 사회에, 그리고 생태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뿐만 아니라 휴식은 하느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이다. 주일과 안식일이 거룩한 것은 하느님이 이 날을 거룩하게 한데 있다. 그러기에 휴식과 여가는 자기 자신 안에 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도록 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마에 땀 흘려 일할 때도 그러하지만, 사람이 제대로 쉴 수 있을 때 더욱더 인간다워지고 더욱더 하느님다워진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휴식과 여가는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가고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이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적어도 이때만이라도 세상의 속도에서 후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웃과 사회를 돌아보고, 우주만물과 전체 생태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길러야 한다. 참다운 인간 존재는 그리고 그 행복은 소비하고 생산하는데 있지 않다. 오늘날 마치도 상품을 소비하면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 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의 존재와 행복은 하느님 창조의 질서 안에서 회복되고 충만해진다.

이런 눈과 마음으로 우리의 휴가와 여가를 설계하자. 우리의 휴가를 휴가답게 보내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휴가와 여가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해보자. 우리의 고민을 풍요롭게 해줄 우리 시대의 한 어르신의 글을 소개한다. 전 세계 베네딕토 수도원의 수석 아빠스이신 노트거 볼프는 「그러니, 십계명은 자유의 계명이다」(분도출판사, 2014)라는 책에서 주일의 의미와 휴식과 거룩한 날의 의미를 우리에게 이렇게 전해준다.

“나는 너의 주 하느님이다. 나는 너에게 일상을 멈추고 거룩한 날을 지키라 명한다. 네 생애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네 삶에 리듬을 찾기 위함이다. 나는 너에게 거룩한 날을 지키라 명한다. 너의 삶이 일과 돈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고, 눈앞의 이득과 무관한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나는 너에게 거룩한 날을 지키라 명한다. 그리하여 네가 하느님을 위한 시간과 믿음의 공동체를 위한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함이며, 미사 중에, 하느님과의 만남 중에 너 자신에게 다가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동화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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