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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평화신문 [특별기고]
고통에 대한 오해와 진실 / 김혜윤 수녀(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
2020.04.19 발행 [1560호]

"코로나19의 고통, 인류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눈빛 찾아야 할 때"



하느님은 왜?

불과 몇 달 사이에 고통의 땅이 되어버린 지구촌 곳곳에서 절박하게 터져 나오는 탄식은 ‘왜?’라는 질문입니다. 왜 하느님은 이토록 고통스러운 상황을 허락하시는지? 면역력 약한 노약자들과 비위생적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이 누구보다 먼저 감염되고 죽어가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도대체 이 비극을 누가 주도하고 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에 대한 논의 중 가장 불편한 것 중의 하나가 ‘신정’(神正,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한다면서, 실제적으로는 불의한 고통과 괴로움에 몰아넣고 공포와 위협으로 무기력하게 하며, 비참과 혐오에 지쳐 복종하게 하고 그렇게 모욕적이게 길들이는 듯한 하느님을 과연 ‘정의로운 분’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 교회는 이러한 기만과 위선을 조직적으로 유지하는 장치이며, 종교는 고통으로 무감각해진 이들을 그저 버티게 하는 ‘아편’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에 휩싸이게 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탓이 아니다

답부터 말씀드리자면 하느님은 정의로운 분이시고 구원자이신 분 맞습니다. 그분은 일관되게 세상과 인류를 사랑하시고, 인간 하나하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시며 끊임없이 소통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축복하신 분이시니 당연히 인간 친화적이고 자연 친화적일 수밖에 없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벌주는 것을 본성적으로 싫어하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어그러진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까지 허락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코로나19를 통한 현재의 고통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자초한 재앙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만과 착취, 신자유주의적 부조리와 계급주의적 불평등, 그로 인한 사회악이 초래한 참극입니다.

고통에 대한 교리적 이해

가톨릭교회의 진리를 종합하고 있는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마술 같은 처방을 내주는 매뉴얼이 아닙니다. 구원의 실체란 고통으로부터의 물리적 탈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히 알고 그 관계성을 사는 것임을 선포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다만, 고통이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실존적 조건임을 인정하고(「가톨릭교회 교리서」 164, 272, 309, 1505, 1521항 참조), 고통의 신비야말로 인간이 진정한 구원에 이르는 은총임을 강조합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구원에 이르는 고통」 Salvifici Doloris, 이하 SD, 1984) 그리고 동시에 하느님께서 직접 이 고통의 현실에 현존하시며 그 문제를 해결해주심을 알려줍니다.(SD 10항, 30항 등)

고통에 대한 성경적 이해

성경 전체는 고통의 현장에서 부르짖으며 구원을 갈망한 이스라엘과 그들을 만나주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진술이며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을 “커다란 고통에 관한 책”(SD 6항)이라고까지 규정합니다.

원죄 이야기: 성경은 창세기부터 죄와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원죄에 대한 신학을 제시한 창세기 3장은 죄란 ‘인간이 하느님처럼 되려 하는 것’(창세 3,5 참조), 즉 ‘인간 스스로 하느님이 되어 하느님이 더는 필요 없게 되는 것’, 그래서 ‘하느님을 망각하고 인간의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것’을 의미함을 알려줍니다.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저버리며 그렇게 멀어지게 될 때 생기는 문제를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을 소외시킬 때 인간은 탐욕에 휩쓸리게 된다”고 간파한 바 있습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 역시 “하느님을 소외시킬 때 궁극에는 인간 자신이 소외된다”고 일갈하였습니다.

인간 스스로 하느님의 자리에 올라 탐욕적 본능으로 세상에 군림할 때 필연적으로 도래하게 되는 결과는 생태적 무질서와 파괴, 인간성 훼손임을 이미 신학은 예견해온 것입니다. 무엇보다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과의 단절은 생명 자체가 차단되는 상황, 즉 고통과 억압이 지배하는 죽음의 현실을 초래하고 만다는 것을 성경은 엄중히 경고합니다. 바로 이러한 비극을 원치 않으셨던 분이 하느님이시기에, 원죄 설화는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아담을 보호하시고 살려두시는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창세 3,21; 4,1)

욥기의 신학: 성경은 고통에 대한 유다인들의 전통적 사고인 ‘신명기적 사고’를 기저에 두고 전개됩니다. 이 사상은 고통을 ‘죄로 인한 벌’로 인식하는 ‘인과율적(因果律的) 논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사고로는 무죄한 이들의 고통이나 선하게 살았지만 불시에 고통을 마주하게 된 이들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신명기적 사고는 전통사상으로서의 위상을 서서히 상실해갔고 그 대안으로 제작된 책이 욥기입니다. 욥기는 불현듯 들이닥친 비극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종국에는 하느님을 만나 그 답을 찾는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고통은 왜?’에 대한 답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찾은 것이고, 불현듯 다가온 고통을 하느님을 직접 만나게 되는 은총으로 이해합니다.

고통의 순기능

우리 앞에 던져진 모든 삶의 문제는 답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학자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 상황에서 거의 한목소리로 동의하는 것은 코로나19로 이제 세계사회의 거대한 구조변경이 시작되었고, 앞으로의 역사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렇게 중대한 역사적 전환기에 서 있는 인류가 다시 신앙의 본질을 언급하며 구원의 길을 모색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과학적으로 무지해서도, 종교라는 위험한 아편에 빠져있어서도 아닙니다. 고통과 죽음이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의 실존이라면,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을 통한 배움이고 진정성 있는 변혁이기 때문입니다. 불확실성이 주는 공포와 불안에 휘말려 점점 더 치명적인 어둠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궁금해해야 하고 질문해야 합니다. 이 위기가 아니라면 절대 묻지 않았을 바로 그 삶의 본질을 똑똑히 배워야 합니다.

고통이 가르쳐준 진실

일반적으로 악과 고통은 상호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고통을 악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이 그 어느 인간적 체험보다 굵직한 통찰과 영적 갈망을 주고, 삶의 중심을 하느님께 옮기게 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은 자체로 귀한 은총이며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범한 일상이 막히고 금지되어 갇혀버린 이 낯선 변화 속에서, 모든 문제의 원인을 하느님께 전가한 채 더욱 왜곡된 혼란에 빠지는 것보다 훨씬 더 비장하게 집중해야 할 일은, 인류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사랑과 연민으로 지켜보시며 아파하시고 안쓰러워하시는 하느님의 눈빛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잘못’은 하느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잘못’ 이해하고 그분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잘못’ 실행한 인간에게 있음을 민감하게 포착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는 이 시간을 통해 고통의 진실을 배운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별되어 진행될지도 모릅니다. 고통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지내야 했던 지난 몇 달간, 혹독하게 학습하고 단련한 통찰로 다시 겸손하게 시작하는 것, 눈물과 뭉클한 감동, 웃음과 슬픔을 체험하며 그 대가로 회복한 인간 본연의 존엄과 품격으로 주변을 보듬는 것, 그런 멋짐과 근사함을 온전히 발휘하며 사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이제는 정말 잊지 말고 견고하게 기억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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