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행렬시 십자가의 방향은?
오늘은 오랜만에 독자분들께 교리상식 문제를 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례학자이신 선배 신부님이 낸 문제에 제가, 그 문제가 매우 쉬워 보이는 것이었음에도 오답을 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자분들도 한번 시험에 들게 해 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기보다는 그 전례 행위가 담고 있는 단순 명료한 신학적 의미를 공유하고 싶어졌습니다.
문제를 풀어 설명해 드리지요. 성당에서 미사 전례를 위해 입당을 하거나 기타 특별 전례를 위해 성당 마당을 열을 지어 돌거나 할 때, 혹은 모든 신자들이 모이는 순례 행렬에서 제일 앞장서서 움직이는 것이 십자고상입니다. 십자고상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있는 상태를 표현해 낸 조형물입니다. 십자고상을 긴 막대 위에 끼워 행렬의 맨 앞에 세웁니다. 그러니까 십자가가 행렬의 맨 앞에 위치하여 행렬을 이끌게 됩니다.
이렇게 행렬을 지어 움직일 때, 행렬의 맨 앞에 있는 십자가의 방향이 오늘의 문제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행렬의 진행 방향을 향하실까요? 아니면 따라오는 행렬을 바라보실까요? (설마 중도를 걷고자 옆을 바라본다고 답하실 분은 없겠죠?) 이것에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는 예수님이 행렬의 앞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채 당신의 백성을 바라보시며 이동하신다고 답을 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예수님의 모습이 당신의 배려심과 친절함을 드러내는 데 더 어울리겠다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내신 전례학 전문가께서는 예수님이 뒤돌아보며 걷는 형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더군요.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이들입니다. 전례 행렬은 바로 이와 같은 단순하고 명확한 정신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이동하는 행렬에서 맨 앞에서 우리를 이끄는 십자가는 나아가는 방향을 바라보며 움직입니다. 십자가를 따르는 이들은 말 그대로 그 뒤를 잇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라는 정체성이 이렇게 십자가의 방향과 행렬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뒤를 바라보며 걷지 말라는 법도 없잖는가? 하는 되물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발을 앞으로 내딛고 있는데 몸은 뒤로 향하여 움직이는 걸음걸이), 멋있기만 하더군! 게다가 단체 구보를 할 때, 우리를 이끄는 조장도 종종 뒤를 돌아보며 팀을 독려하기도 하잖아요? 제가 어릴 때 스케이트 타는 법을 알려 준 이모도, 따라오는 저를 보려고 종종 멋지게 뒷걸음질 치면서 얼음을 지치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례학자 신부님은 철저하게도, 그렇게 되면 우리의 그리스도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즉, 그것은 감시자로서 그리스도가 비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뒤를 감시하며 이것들이 잘 따라오는가 감시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분은 앞을 보셔야 우리가 그를 "따른다"는 의미가 제대로 살아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흥미 있는 것은, 행렬이 중간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 멈춰 서거나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면 십자가가 회중을 바라보며 세워진다는 점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행렬 중에는 진행 방향으로, 멈췄을 때는 회중을 향해 십자가가 방향을 잡는다고 알아 두시면 헷갈리실 필요 없겠습니다.
관련해서, 제대 위에 놓이는 십자가도 기본적으로는 회중을 향하게 됩니다. 그러나 보통 성당에는 제대 뒤편으로 회중을 향해서 십자가가 고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제대 위의 십자가는 사제가 볼 수 있도록 놓여집니다. 그러나 제대 뒤편에 십자가가 걸리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 제대 위의 십자가는 회중을 향해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전례 때 유용하겠죠?
글: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