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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은 성녀 루치아, 성녀 오틸리아 축일입니다.
우리 양정성당에는 순교자들의모후pr.의 강갑선(루시아), 지혜로우신동정녀pr.의 강다원(오틸리아), 사랑하올어머니pr.의 김신자(루치아), 서옥자(루치아), 16교우회의 송순자(루치아), 이금선(루치아), M.E의 이윤자(루치아), 성인들의모후pr.의 이필순(루치아), 제대회의 임주안(루치아), 결백하신모후pr.의 정말임(루치아), 정영순(루치아), 자모회의 정지영(루치아)님이 있습니다축하드립니다.



 성녀 루치아(Lucia)는 시칠리아(Sicilia)의 시라쿠사(Siracusa)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양친은 귀족이었으며 매우 부유하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신앙을 배워 익히며 자랐지만 불행히도 아기 때에 부친을 잃었다. 아직 어린 소녀였던 그녀는 스스로 하느님께 동정을 서원했는데, 이 사실을 비밀로 간직하던 그녀는 어머니의 결혼 강요를 늘 받았다. 딸의 설득에 감복한 그녀의 어머니 에우티키아(Eutychia)는 카타니아(Catania)로 가서, 자신이 고생하던 병을 낫게 해달라고 성녀 아가타(Agatha)의 무덤에서 기도하였다. 이때 루치아도 따라갔는데, 어머니의 기도에 응답이 있었다.

   성녀 루치아는 어머니에게 동정으로 살아갈 허락을 받고 이어 자신의 결혼 지참금마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자고 청해 허락을 받았다. 그러자 성녀 루치아에게 청혼했던 이가 자신의 소유가 될 재산이 사라진 것에 분개해 그녀가 그리스도인이며 로마제국의 법을 어겼다고 고발하였다. 이때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절정에 달한 시기였기에 성녀 루치아는 즉각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녀가 재판관 앞에서 끝까지 당당하게 자신의 신앙과 의견을 피력하자 재판관은 그녀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닫고 매음굴로 보내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여러 남자들과 소떼까지 이용해 성녀 루치아를 끌어내려 했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재판관은 성녀 루치아를 불에 태워 죽이려 했으나 이 또한 성공하지 못하자 마침내 긴 칼을 성녀의 입속에 넣어 죽였다고 한다.

   빛을 의미하는 룩스(Lux)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이름을 가진 성녀 루치아는 이런 모진 고문을 받을 때 눈알이 뽑히는 형벌까지도 받았다. 그러나 천사의 도움으로 뽑힌 눈알을 돌려받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성녀 루치아는 이름 그대로 어둠을 밝히는 빛나는 동정 순교자로서, 시력이 약하거나 시력을 잃은 이들과 눈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 특별한 공경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성녀를 그린 성화나 상본을 보면 보통 성녀가 자신의 두 눈알이 담긴 쟁반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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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딜리아(Odilia), 아딜리아(Adilia), 오딜(Odile) 등의 이름을 가진 성녀 오틸리아는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방 보주(Vosges) 산맥의 오베르하임(Oberheim)에서 알자스의 공작이었던 아버지 아티크(Attich)와 메로빙거 왕가 출신인 어머니 베레스윈드(Bereswinde)의 맏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잔인한 성격을 지닌 사람으로 앞을 볼 수 없는 데다 딸로 태어난 성녀 오틸리아를 하인들을 시켜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유모의 도움을 받아 겨우 숨길 수 있었는데, 아버지의 분노를 피해 성녀 오틸리아가 맡겨진 곳은 지금은 프랑스 지역이 된 발마(Balma)에 있던 한 수녀원이었다.

   그녀는 비록 앞을 보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밝고 착하게 자랐다. 673년경 성녀 오틸리아는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의 성 에르하르두스(Erhardus, 1월 8일)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주교가 세례 중에 바른 성유가 그녀의 눈에 닿자마자 눈이 열려 시력이 온전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눈을 뜨고 세상을 보게 된 성녀 오틸리아는 아버지의 화가 풀렸으리라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아버지는 어머니의 집안인 메로빙거 왕조와 싸움을 벌이던 중이라 딸을 더는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성녀 오틸리아의 남동생들을 죽이고 생트 오딜(Sainte-Odile) 산에 딸을 감금시켰다.

   680년경 성녀 오틸리아의 아버지는 처가인 메로빙거 왕조를 없애려는 음모가 어느 정도 성공해서 권력을 차지하자 그녀를 풀어 주고, 보주 산꼭대기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몽생트오딜(Mont Sainte-Odile) 수녀원을 설립해 원장이 되도록 관용을 베풀었다. 12세기까지 이 수녀원은 호헨부르크(Hohenburg) 수녀원으로 불렸다. 몇 년 후 성녀 오틸리아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수녀원 아래 산기슭에 니더뮌스터(Niedermunster) 수녀원을 설립해 원장이 되었다. 두 번째로 설립한 수녀원에는 신자들을 위한 병원도 함께 지었다. 여기서 성녀 오틸리아는 아버지의 변화에 기뻐하며 남은 생을 기도와 봉사로 지내다 720년 선종해 몽생트오딜 수녀원에 묻혔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프랑스를 넘어 독일까지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미 9세기부터 여러 지역 교회의 성인 호칭 기도에 그녀의 이름이 등장했다. 그녀가 묻힌 무덤은 신자들, 특히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순례지가 되었다. 그로 인해 14세기까지 성녀 오틸리아의 유해가 유럽 여러 도시에 나뉘어 모셔졌다. 적어도 16세기 이전부터 성녀 오틸리아는 알자스 지방과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나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져 왔다. 1807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는 공식적으로 성녀 오틸리아를 알자스 지방과 시각장애인 및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그 후 성녀 오틸리아가 살던 몽생트오딜 수녀원의 샘물은 눈병을 치료한다고 여겨지면서, 샤르트르(Chartre)와 루르드(Lourdes) 등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유명한 순례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성녀 오틸리아는 보통 두 눈이 있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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