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그리스도인의 호흡

 

제목을 적으면서 많은 분들이 진부해하실까 염려됩니다. 도처에서 수없이 많이 강조되고 사용되는 만큼 새롭게 여겨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가르침을 눈동자처럼 지키고 손가락에 묶어 마음속에 새긴다는 성경 말씀에 기대어 바꾸지 않으려 합니다.(잠언 7장 참조) 진리는 세월이 흐른다고 변하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부디 이 제목이 여러분의 영혼에 깊이 박혀 호흡하듯 기도를 바치게 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 글을 적기에 앞서서 고백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요. 솔직히 저는 기도가 몹시 거룩하기 때문에 몸도 마음가짐도 정리정돈이 된 상태에서 바치는 것으로 여긴 적이 꽤 오래였습니다. 그래서 교우분들께서 거리를 걸으며 묵주기도를 바칠 적에도 표정을 고상하게 하여 주위에 표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드렸고 혹은 준비 없이 바치는 기도가 얼마나 무성의한 것인지를 설명하기도 했었지요.

이런 생각은 아마도 신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것 같은데요. 이제 사제생활을 4반세기 채우고 보니, 이야말로 제 어리석은 독단이었고 사제의 모자란 아집이었다는 걸 아프게 깨닫습니다.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런 헛소리에 흔들림이 없도록 마음 마음을 붙들어 지켜 주셨으리라 믿으며 죄스런 마음을 봉헌하며 지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라하시되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기도를 생활화시켜야하는 사명과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는 존재이기에 기도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기도는 시간이 넉넉할 때, 마음에 여유를 갖고 제대로바쳐야하는 엄숙하고 경건하고 단정한 행위로 오해하는 일이 흔합니다. 때문에 옛날의 저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처럼 여기거나 바쁘고 분주하면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인 듯이 생활하는 분들이 꽤 많으십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왜 하느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임에도 기도와 친해지지 못하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하느님께 다가가기를 주저하며 기도를 미루기만 하는지....... 이런 행태야말로 주님의 뜻을 저버리는 생각이며 주님께로부터 돌아서는 행위임을 어떻게 이해시켜 드릴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펼친 성경에서 기도할 때 소심해지지 말고 자선을 베푸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라.”(집회 7,10)는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소름이 돋더군요. 그 순간 이 말씀이 통 크게그리고 화끈하게기도하라는 뜻으로 다가왔으니까요. 기도하되 긴가민가 의심하지 말고 온전히 의탁하는 배포를 지니라는 당부로 읽혔으니까요.

사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전폭적으로 믿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꾸준히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의심하고 있는 방증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는다면 그 좋은 기도를 바치지 않을 리가 만무하니 말입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무조건 기도만 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쉬지 않고 꾸준히 기도하며 살아갈 때 얻을 수 있는 좋은 것들을 많이도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니 기도를 미룰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도 그런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주님께 기도하기 위해서는 마음도 몸도 정갈한 상태로 준비되어야만 하느님께 통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 잘못된 생각이 깨진 것은 어느 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묵상할 때였습니다. 그 날,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잘 바치기 위해서 준비를 했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극도로 산란했으며 같이 기도해주기를 원했던 제자들은 깜빡 깜빡 졸고 있었으니까요. 그 외롭고 괴로운 상황에서 예수님의 표정이 고상했을 리가 만무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절박한 순간에 예의바르고 단정하게 조목조목 기도문을 낭송하여 바치는 여유를 부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세상에게 배신당하고 하느님께마저 버림받는 상황에서 결코 그럴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만약에 그랬다면 그건 가식에 불과했을 테니까요.

그날 예수님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처참했을 것입니다. 기도해도 기도해도 묵묵부답이신 하느님이 야속해서 아버지를 향해서 소리소리를 지르셨을 지도 모릅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하소연하는 심정이 오죽이나 괴로웠으면 저는 인간이 아닌 구더기, 사람들의 우셋거리, 백성의 조롱거리...”(시편 22참조) 라며 당신의 처지를 토로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기도란 지금 바로 내가 겪는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 기쁘면 기쁘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모두를 말씀드리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를 힘든 일이 생기면 청원드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주님의 뜻에 순명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는 시간이 넉넉할 때 바치는 것으로 여기는 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기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더해서 미사 중에 기도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오해하는 분들은 기도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부끄럽고 창피한 옛날의 저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면서 생활하는 존재입니다. 기도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하고 기도하면서 공부하는 학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잘라 표현해서 우리 마음은 항상, 즉시, 기도하며 지내야하는 것입니다. 그게 가능한지 물으십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싶으십니까?

물론 기도를 잘 바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기도를 일상화시키기 위한 교육도 소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지면을 빌어 딱 한 가지만 강조해드리려 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기도를 담대한 마음으로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통 크게 기도하되, 자선을 베풀 것을 요구하신 주님의 뜻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통 큰 기도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벗어낸 기도라 생각됩니다. 기도 중에 두루 이웃의 사정을 살펴 기도드리는 마음이 바로 자선을 베푸는 마음가짐이라 헤아립니다. 나아가 교회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봉헌하라는 의미라 살핍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푸지고 넉넉한 자선의 마음이라 믿습니다.

기도는 하늘만큼 높으신 하느님과 낮고 낮은 인간의 대화입니다. 땅의 인간이 하늘의 하느님과 통하는 통로가 바로 기도입니다. 때문에 기도하기 어려운 순간은 없습니다. 기도를 미뤄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만약에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라면 더욱 더 하느님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내 아들아, 너의 마음을 나에게 다오.”(잠언 23,26)라고 속삭이며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쉬지 않고 계속 기도하는 것은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뜻에 순명하는 마음으로 끊이지 않는 통 큰 기도를 바치심으로 마침내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루카 22,44) 땅에 떨어졌던 그 혼신의 경지에 오르는 축복도 누리시길 손모아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37 3월 20일 말씀일기(묵시 17-20) 월평장재봉신부 2019.03.20 14
1036 3월 21일 말씀일기(묵시 21-22) 월평장재봉신부 2019.03.21 13
1035 말씀꽃 누르미에 대한 부산일보 기사 월평장재봉신부 2019.03.22 42
1034 3월 23일 말씀일기(창세 1-4) 월평장재봉신부 2019.03.23 9
1033 신간 소개(일흔번을 읽고서야 눈뜬 사연) 1 file 월평장재봉신부 2019.03.23 49
1032 2019년 경향잡지 3월호(기도의 효과가 의문입니다) 1 월평장재봉신부 2019.03.23 25
» 2019년 그물지 3월호(기도, 그리스도인의 호흡) 월평장재봉신부 2019.03.23 23
1030 3월 24일 말씀일기(창세 5-10) 월평장재봉신부 2019.03.24 16
1029 3월 25일 말씀일기(창세 11-16) 월평장재봉신부 2019.03.25 17
1028 3월 26일 말씀일기(창세 17-20) 월평장재봉신부 2019.03.26 13
1027 3월 27일 말씀일기(창세 21-24) 월평장재봉신부 2019.03.27 16
1026 3월 28일 말씀일기(창세 25-28) 월평장재봉신부 2019.03.28 12
1025 3월 29일 말씀일기(창세 29-30) 월평장재봉신부 2019.03.29 11
1024 3월 30일 말씀일기(창세 31-33) 월평장재봉신부 2019.03.30 11
1023 3월 31일 말씀일기(창세 34-37) 월평장재봉신부 2019.03.31 10
1022 4월 1일 말씀일기(창세 38-40) 월평장재봉신부 2019.04.01 14
1021 4월 2일 말씀일기(창세 41-43) 월평장재봉신부 2019.04.02 11
1020 4월 3일 말씀일기(창세 44-47) 월평장재봉신부 2019.04.03 11
1019 4월 4일 말씀일기(창세 48-50) 월평장재봉신부 2019.04.04 16
1018 4월 5일 말씀일기(탈출 1-4) 월평장재봉신부 2019.04.05 1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6 Next
/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