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라고 하셨는데 천주교 신자분들은 너무 쌀쌀 맞습니다. 몸이 아파 소속 단체에서 활동을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를 볼 때마다 언짢아하는 것이 느껴져서 상처를 받았습니다. 결국 본당을 옮겨서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미사를 드립니다만 마음은 편치가 않네요. 타본당에 다니면서 선교한다는 것이 웃기는 일이기도 하구요. 어떻게 할까요?

 

자매님 짧은 글속에 담긴 아픔이 진해서 한 사흘, 마음앓이를 했습니다. 무어라 말씀드려야 위로가 될지 세 밤을 꼬박 망설였던 겁니다. 그런데 오늘 미사에서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에페1,18) 라는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야말로 자매님께 위로의 말씀이라 싶어, 용기를 냅니다.

잘 아시겠지만 교회는 완성된 성인들의 모임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교회는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그분 사랑과 자비에 의탁하는 마음으로 모인 미성숙한 곳에 불과하니까요. 교회 구성원은 모두 허물 많고 흠 많은 존재라는 점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거룩하다고 표현되는 것은 그 구성원들을 거룩하게 하는 하느님의 존재이며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다는 의미입니다. 결코 교회 구성원들이 거룩하다는 뜻이 아닌 것이지요. 그러기에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 늘 길 위에 있는 존재이며 언제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회개하면서 거룩한 여정을 해 나가도록 돕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세상에 전하는 고유하고 유일한 역할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쇄신해야 하는 생명체임을 인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위해 병이 필요한 것처럼, 신앙을 위해 교회가 필요하다고 말한 브루스 마셜은 신선한 포도주를 간직하기 위해서는 병이 필요하지만 병의 모양과 형태는 변화할 수 있고, 변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는데요. 교회가 항상 언제나 쉼 없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하게 해 줍니다.

 

인간은 제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쌓은 인물이라 하더라도 죄인입니다. 오류를 범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선행 역시 하느님의 기준에는 턱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는 늘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은총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해드리는 것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마음가짐이 됩니다.

예수님이 보여준 사랑이야말로 교회의 빼어난 특징인데요. 교회는 주님의 은혜로 상처를 치유하는 복음의 약을 가졌기에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서 용서와 화해의 몸짓을 보이며 완성을 희망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힘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이 없으면 하느님의 빛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온 삶에서 실천해야 할 일은 사랑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근본을 망각할 때 커다란 위험에 처해집니다. 결국 분쟁과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로 추락합니다. 때문에 용서와 화해를 위한 마음을 갖추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대단히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리스도인 각자가 분열을 위한 삶인지 아니면 일치와 화해를 위한 삶인지 스스로를 잘 성찰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들여다볼 줄도 알고 또 반성도 할 줄 아는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충분히 도덕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자질을 선물해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우들 사이에서 서로를 품어주는 사랑이 모자라 상처를 주고받으며 마음에 응어리가 맺히는 일이 흔합니다. 인간의 모자람이며 이 세상에 완덕의 인간은 아무도 없는 까닭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상대의 모자람을 통해서 오히려 내 삶을 비춰보고 발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옳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관계가 어긋나 아픔이 생길 때에나 상대의 모자란 처신 탓에 내 마음이 상처를 얻었을 적에 그것을 꼭 쌓아 마음속에 가두어버리는 일만은 피해야 합니다. 이야말로 스스로 사랑으로 도전할 생각을 포기한 모습이며 고통에 적극적으로 도전하지 않고 물러서는 비겁한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얽힌 감정을 털어내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사랑이신 주님의 기쁨을 위해서,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훨씬 너르게 상대를 품어주는 삶으로 도전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우리 주님은 를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나를 아프게 하는사람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두 분 모두를 똑같이 너무너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헤아려 주십시오. 일상의 사건들을 통해서 나를 더욱 성숙해 지도록 이끄시는 그분의 손길을 뿌리치지 말아주십시오.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닌 상대일지라도 서로 사랑하라고 먼저 사랑하라고 권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내몰라라 하지 말아주십시오. 상대의 마음을 홀로 판단하고 멀리하는 일은 서로가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는 잘못입니다.

이제 상대에게 양보하고 넉넉히 품어내는 마음으로 용서를 살아내고 싶다는 원의를 그분께 고백해 드리세요. 그리고 다시 본당으로 가셔서 그분께 먼저 웃어 주십시오. 더 이상 상처주는 사람으로 살지 않도록 더 많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상대에게 용서할 기회를 주는 복된 모습을 먼저 살아내 주십시오.

 

진리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지금 자매님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은 바로 참 행복을 놓쳤다는 표징입니다. 이제 그 행복을 되찾으세요. 한발 양보하고 두 걸음 물러서 이해함으로 기쁜 참 행복을 누리도록 하세요. 부디 천주교 신자들은 너무 쌀쌀 맞다라는 말을 듣게 하는 그 사람들의 굳은 마음을 사랑으로 녹여 변화시키는 귀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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