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권 “이건 알아두세요”
그릅니다
237. 독서자 중에 ‘하느님’을 ‘하나님’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있던데 괜찮은가요? 그 차이가 무엇인지도 알고 싶습니다. (문제 40)
238. 고3 여학생입니다. 과학이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은 것을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는 신부님의 말씀과 그들을 낮추어보는 듯한 표현이 불편합니다.
239. 한 블록 건너 성당과 교회가 판치는 거리에서 돈을 더 벌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거대한 성당을 짓기보단, 매일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240. 인류가 진화했다는 모든 증거들이 잘못되고, 다윈은 거짓말쟁입니까? 박물관에 있는 것도 모두 거짓인가요?
241. 세례식이 있던 날, 외부에서 꽃을 구입하지 말고 성당에서 사라는 공지사항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하느님의 존재 자체를 떠나 약자를 도우기 위한 단체”라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꽃 장사를 돕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242. 두 주일마다 미사에 참석합니다. 성사를 보면서 늘 너무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사정상 미사에 빠질 경우, 주님의 기도를 3단 외우면 성사를 안 봐도 된다던데, 정말 그래도 되나요?
243. 냉담을 풀고 의무적인 신앙생활을 했는데 이제는 제 십자가도 기꺼이 지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직장 때문에 주일에만 성당에 갈 수 있는데요. 제 건강상 월 2회 산악회 등반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지요?
244. 주일 미사에 빠졌으면서도 뻔뻔스럽게 성체를 영하는 신자들을 위한 재교육이 필요할 듯하여 건의합니다. 성사를 봐야 한다고 슬쩍 일러주어도 못들은 척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속이 상합니다.
245. 성전의 장궤틀에 만들어 놓은 가방걸이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장궤틀에 드릴로 구멍을 내어 나사로 박아 놓은 가방걸이는 장궤틀을 단순한 의자로 생각하여 설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편의상 무릎을 끓을 수 있는 틀을 없애고 의자용도로만 만드는 것... 편의대로만 한다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가방걸이를 없애면 좋겠습니다.
246. 요즘 아기 백일에 삼신상을 차려서 삼신할머니께 비는 것이 유행입니다. 우리의 전통풍습이니 이벤트행사로 해주고 싶습니다. 기도이니까 괜찮지요?
247. 친정은 불교입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지만 49재를 올리는 친정 식구들을 따라 불경을 외우고 절도 하고 불전에 돈도 올리고 영전에도 돈을 올렸습니다. 아버지 49재이기에 절에서 불경을 외우고 불상에 큰절도 하고 있는데 신자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또 딸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좋은 방법은 없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243. 냉담을 풀고 의무적인 신앙생활을 했는데 이제는 제 십자가도 기꺼이 지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직장 때문에 주일에만 성당에 갈 수 있는데요. 제 건강상 월 2회 산악회 등반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지요?
집안을 책임진 가장으로써 건강을 돌보려는 생각은 백번 옳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한 달에 두 번, 산행이 없을 때만 미사에 간다’는 수순을 정해 놓은 듯 해서 안타깝습니다.
한편 왜, 굳이 그 “산악회 모임”을 고집하는지, 미사를 걸러야만 가능한 모임에서 산행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주일 새벽미사 후에 근교의 산을 찾는 것으로도 건강을 위한 산행은 충분하지 않을까요?
‘한 달에 두 번 산행을 하지 않으면 건강을 잃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집착입니다.
온전히 맡겨드리지 못하는 믿음의 결핍입니다.
하느님보다 내 몸을 더 섬기고 사랑하는 우상숭배입니다.
냉담 신앙을 어렵게 되찾아 주신 그분 사랑을 기억하세요.
자매님을 다시 찾으려 타들어간 그분 심정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온 것을 그분께 맡겨드리는 결단을 내리도록 하세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달콤한 것들보다 주님을 훨씬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분을 더 사랑하기에 미사를 훼방하는 일들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습니다.
가장 좋고 정말 아까운 것을 봉헌하심으로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는 칭찬을 듣기 바랍니다.
자매님의 지혜로운 선택이 그분의 기쁨이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