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소곤소곤

교회 안에서 의아했어요

 

35.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차림새에 정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

36. 헌금의 적정선을 정하기가 애매합니다. 어느 정도가 적당한 것입니까?

37. 미사 진행 도중에 들어와서 성체를 영하는 사람을 볼 때 분심이 듭니다. 성체만 영하면 미사 참례가 인정되는 것인지요?

38. 독서하러 나갈 때 왜 제대에 인사를 하는지요? 감실을 향해 절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39. 요즘에는 공심재(空心齋)를 지키지 않는 신자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40. 봉헌자는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며 사제에게 절을 하는데 모든 신자들도 절을 해야 하나요?

41.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본당마다 다른데, 교회가 지향하는 평화의 인사는 어떤 것인지요?

42. 성찬의 전례 중에 밀떡이 성체로 변화되는 시점이 알고 싶습니다.

43. 하루에 몇 번 성체를 영할 수 있나요?

44. 미사보를 쓰지 않고 성체를 모시면 성사를 봐야합니까? 미사 중에 안 써도 된다는데 어느 쪽이 옳은가요?

45. 어린이에게 성체를 대신해서 사탕이나 초콜릿을 주는 일이 옳은가요?

46. 미사 예물을 바쳤는데 발표되지 않았다고 사무실에 따지는 경우를 봅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47. 33회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 미사와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하던데요?

48. 성탄을 잘 맞이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49. 구유 경배를 드리는 의미와 경배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41.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본당마다 다른데, 교회가 지향하는 평화의 인사는 어떤 것인지요?

 솔직히 우리 신자 분들께서 평화의 인사를 너무 거룩하게(?) 혹은 무겁고 냉랭하게 나누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거의 모든 분들께서 하느님의 어린 양이 합송되면 냉철하게 그만두는 일도 마찬가지지요.
예수님께서 당부하신 평화의 인사가 이렇게 메마른 행위일까요?
웃는 얼굴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에게 주님의 큰 평화가 쏟아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나누는 평화는 바로 내 삶 안에 주님의 평화를 불러들이는 첩경이 되기 때문이고, 내가 빌어 준 평화를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나에게 그 크고 많은 평화가 되돌아 올 것이라는 보장까지 해주신 일이기에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루카 10,5-6)라는 말씀은 상대가 어느 누구이든지 가리지 말고, 주님의 평화를 한껏 빌어 주라는 명령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누구에게나,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에게까지도 아낌없이 주님의 평화를 나누어 주는 모습을 보고 싶으신 것이지요.
이 소중한 약속에 응답해 드리는 평화의 신비를 차갑고 냉랭하게 혹은 아는 사람들하고만 나누고 있다면 정말 손해가 막심한 일입니다.
부디 그리스도인의 풍성한 평화의 인사 덕분에 온 세상이 주님의 평화로 가득해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2 288. 딸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매사 일이 꼬입니다. 저희 잘못 탓이라 싶어서 봉사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데, 딸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두려워합니다. 월평모힐라리오 2022.01.16 11
61 289. 원하지 않은 이혼으로 힘들었지만 신앙 안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본당 활동도 열심히 했지요. 그런데 의견 차이가 생기자, 함께 봉사하던 분이 “이혼한 여자가 감히 신성한 제대 봉사를 한다”고 제 이혼 사실을 소문냈습니다. 이혼녀는 본당 활동을 못합니까? (문제 44) 월평모힐라리오 2022.01.16 44
60 290. 엠티에서 남녀가 함께 하는 게임벌칙이 무척 민망했습니다. 벌칙에 반대하니까 별나게 군다며 친구들이 아우성을 쳐서 난감했습니다. 속 좁고, 구식으로 보이기가 싫었지만 그런 벌칙에 응하는 것은 신앙인의 태도가 아니라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말세의 징조 같았습니다. 월평모힐라리오 2022.01.16 27
59 291. 요즘 연예인들의 혼전관계 사실이 공공연히 보도됩니다. 이제 혼전관계는 숨겨야 할 일도 아니고 죄도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월평모힐라리오 2022.01.16 16
58 292. 인터넷에 떠도는 반 그리스도교적인 불경한 글을 읽으며 잠시 솔깃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이야기의 잔상이 쉬 떨쳐지지 않습니다. 이 내면의 고통을 어떻게 잠재울까요? 월평모힐라리오 2022.01.16 3
57 293. 방송에서 어느 스님이 선과 악은 상대적이라고 설명하던데요. 이순신 장군의 위장전술이 우리에게는 선이지만 일본인에게는 악이라는 예를 들더군요. 그런 어이없는 주장에 관하여 꼭 집어서 반박하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월평모힐라리오 2022.01.16 5
56 294. 자비로운 하느님이시지만 제가 그동안 지은 죄는 용서해 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월평모힐라리오 2022.01.16 13
55 295. 외인인 남편이 성지순례 중에 테러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하느님이 계신다면 이런 사고는 막아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대답을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요? 월평모힐라리오 2022.01.16 12
54 296. 가톨릭성가 287번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노래” 가사에서 “서라벌 옛 터전에 연꽃이 이울어라”는 부분에 의문이 듭니다. 경주 김씨가 아니라 김해 김씨인 김대건 신부님과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이 무슨 관계인지요? 월평모힐라리오 2022.01.16 49
53 297. 성경을 효율적으로 읽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는 어떤 성경을 선택하면 좋을까요? 신부님께서 기쁠 때와 슬플 때 용기가 필요할 때에 읽고 도움을 얻는 성경도 알고 싶습니다. 월평모힐라리오 2022.01.16 39
52 복된 속삭임으로 행복해지세요(소곤소곤 7권, 장재봉스테파노) 월평모힐라리오 2022.02.01 9
51 298. 천주교는 기도 끝에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하여 비나이다”라고 하고 개신교는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라고 합니다. 의미는 같겠지만 천주교의 표현 ‘비나이다’의 어감이 왠지 범신론적 신앙대상에게 하는 샤머니즘적 표현 같습니다. 개신교 측 표현이 좀 더 그리스도적이지 않나요? 성경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 빌어라(비나이다)는 표현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월평모힐라리오 2022.02.02 17
50 299. 구약성경을 읽으면 하느님의 뜻이 너무 오락가락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변덕쟁이’ 같습니다. 월평모힐라리오 2022.02.03 8
49 300. 창세기에 4,13-16 의하면 아담과 하와 전에 카인을 죽일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이것은 뭐라 해석하나요? 아담과 하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인가요? 아담과 하와가 첫 조상이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월평모힐라리오 2022.02.04 14
48 301. 노아는 방주에 날짐승과 들짐승을 쌍 맞추어 태웠는데, 바다의 고기 이야기는 없습니다. 어떻게 되었나요? 홍수에 다 죽었다면 다시 번성할 수 없었을텐데…… 궁금합니다. 월평모힐라리오 2022.02.05 75
47 302. 백성을 멸하려고 했던 불뱀이 인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예표라는 논리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방식이 너무 모순적으로 다가옵니다. 월평모힐라리오 2022.02.06 6
46 303. 예수님은 빵을 많게 하는 능력자신데 왜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을 만큼 궁핍한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하셨을까요? 결국 논쟁에 휘말리셨던 이유가 무엇인지요? 월평모힐라리오 2022.02.07 8
45 304. 예수님께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던 이스카리옷 유다에 관한 질문입니다. 비록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으로 그릇된 결정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영원히 용서로부터 제외된다는 선언이 혹독해 보입니다. “성경에 쓰여진 대로 그리 되려고 일이 일어났다”라는 말씀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계없이 미리 정해진 운명에 따른다는 의미 아닙니까? 월평모힐라리오 2022.02.08 26
44 305. 미사 중에 바치는 신앙고백(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혹은 사도신경)은 어떤 의미의 기도인가요? 주일미사에서 신경을 뺀 적이 있는데, 사제에게 이 기도문에 대한 선택의 고유 권한이 있는 겁니까? 월평모힐라리오 2022.02.09 18
43 306. 사도신경에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라는 구절이 있는데 육신의 부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왜 육신의 부활이라고 표현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차라리 영혼의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나요? 월평모힐라리오 2022.02.10 12
Board Pagination Prev 1 ...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Nex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