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사순 제1주일 <믿음의 셈법을 공부합시다>

(2021. 2. 21 창세 9,8-15; 1베드 3,18-22; 마르 1,12-15)

 

가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부러워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때문에 태중의 아기로 오시어 알콩달콩

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 자라며

땀흘려 노동하는 평민의 삶을 체험하신 것이라 감히 헤아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성령께 내몰려

광야에서 들짐승과 함께 지내신 마흔 날

노아가 방주에서 온갖 짐승들과 생활했던 한 해에 빗대어봅니다.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시어 사탄에게 유혹 당하게 하신 성령께서는

그날 노아가 방주에 들어서는 순간,

손수 문을 닫아주신 그분이십니다(창세 7,16 참조).

이리 생각하니 오늘 우리의 퍽퍽한 세상살이도

모두 그분께서 작정하고 보내신곳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사실, 노아가 독특한 방주살이를 겪어야했던 이유는

하느님께서 그의 삶을 의롭다고 평하신 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광야로 내몰린 시기도

세례를 받고 하늘로부터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축복의 말씀을 들으신 이 후였습니다.

이리 따지니

하느님 보시기에 사랑스럽고 의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죄다외롭고 힘들고 벅찬 광야생활을 겪었던 사실이 깊이 다가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예감하게 됩니다.

 

세상은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이리 불공평하냐고 투덜댑니다.

사랑의 하느님이시라면

왜 세상의 고통이 사라지지 않느냐고 항의합니다.

뭐든지 맘대로 할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

무슨 이유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처참한 꼴을 당했겠느냐고 따집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인들마저 복음을 살아가는 일이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럽다고 넌덜머리를 냅니다.

당장 덜어달라고 하소연하고

없애주지 않는다고 원망합니다.

믿음이 뭔 소용이냐

그분께 토라지고 의심하기까지 합니다.

난감한 모습입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께서

들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무섭고 두려운 광야에서

노아가 지켜냈던 믿음을 기억하며 기운을 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히브 5,8)을 배우셨던 인간이시니,

틀림없이 그러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의인 노아의 삶을 공부하고 배워 익히는 일이야말로

그분을 닮을 모습이라 확신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노아가 겪은 방주생활은

엄청난 유혹과 시련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두렵고 막막한 상황에서

무조건 라고 답하는 일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끝을 모르면서도

매양 믿습니다라고 의탁하는 일은 큰 시련이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방주살이는

땅에서 악인들과 섞여 살아가기보다

훨씬 깊고 난해한 의문과 의혹에 휩싸이게 했던

시험의 때였을 것이 분명하다는 얘깁니다.

 

어쩌면 방주의 삼백칠십다섯 밤은

방주를 짓기 위해서 땀 흘리고 수고했던 한 세기의 노동보다

훨씬 큰 고난도의 믿음을 필요로 했을 것이라 짚어집니다.

때문에 사방이 꽉 막힌 곳에 갇혀 지내면서도

몸소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차별하지 않고 돌본 사실 하나 만으로

그분께 보여드릴 확실한 의인의 증표를 취득했을 것이라 싶어집니다.

매일 매끼 때마다 먹은 만큼 식량이 줄어드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부정한 짐승들까지 두루두루 먹이고 살폈던 아량이야말로

곧이 곧대로

있는 그대로

더하지도 빼지도 않는하느님을 향한 순박한 믿음임을 깨닫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얄팍한 인간의 계산이 아닌,

믿음의 셈법임을 깊이 새깁니다.

 

그날 성령께서는 그분을 광야로 몰아내어

들짐승과 함께 지내도록 하시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결코 낙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넌지시 일깨워 주신 것이 아닐까요.

세상은 들짐승처럼 험한 사람들이 있는 거친 곳임을

분명히 깨우쳐 주려 하신 것이 아닐까요.

들짐승 같은 사람들과 섞여 지낼지라도

의인의 믿음을 지키라고 당부하신 것은 아닐까요?

좋은 사람,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넘어

들짐승 같은, “부정한존재들까지도

살뜰히 살피고 돌보라는 명령은 아닐까요?

 

사순, 광야 같은 내 마음에 심어주신 복음을 되새기며

믿음의 셈법을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내게 맡기신 복음을

불의한 자들과도 넉넉히 나누려

마음 폭을 넓히는 때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셈법에 익숙해져서

그분께 힘을 드리는 자녀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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