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사순 제4주일 <우리는 새것이 되었습니다>

(여호 5,9.10-12; 2코린 5,17-21; 루카 15,1-3.11-32)

 

사순 제4주일에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난해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을 들으면서 뭔 말씀인지 도무지 못 알아듣겠다

푸념하는 분은 계시지 않을 듯합니다.

무엇보다 잘 알려진 성경구절인 까닭이기도 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부모님 속을 썩인 경험이 있는 덕분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자녀 때문에 속을 썩은 체험도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느끼도록 해 줄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께서

자신이 큰 아들일지 혹은 작은 아들과 더 닮았는지를 생각하며 잠시 잠깐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기도 하셨으리라 짐작이 되는데요. 어떠셨나요?

그 마음 한편에

거룩한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참으로 바라고 원하시는 주님의 뜻도 살피셨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사실 오늘 복음의 두 아들은 모두 불효막심합니다.

아버지 재산을 얻어 나가는 주제에 독립선언을 했던

작은 아들의 주접한 꼴이야 두말할 것 없는 망나니 행태입니다.

그런데 큰아들 역시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도

마음은 따로 놀고 있었던 게 분명하니, 효자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 말씀의 핵심을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라면서

아버지 마음을 후비고 있는 작은 아들의 고백에서 찾습니다.

물론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라는

큰 아들의 투정도 예외가 아니겠지요.

그 안에 숨겨진 사순의 참뜻이 무엇일지요.

사순 시기,

교회는 모든 신자들이 주님의 사랑을 더듬어 기리도록 돕습니다.

모두, 주님의 큰 사랑을 깨달아 기쁘고 감사한

찬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때문에 내가 오늘 너희에게서 이집트의 수치를 치워 버렸다

주님의 말씀이 예사롭지 않게 들립니다.

당신께서 손수 우리 속에 지녔던 이집트의 수치

치워버렸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세상의 것에 물든 우리 마음도

세상의 것들에 익숙했던 우리 행위도

세상의 것으로 쏠리는 우리 생각까지 모두

새것이 되었다니 어안이 벙벙합니다.

 

이런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마음의 할례로써

옛것이 아닌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거듭 선포하십니다.

우리들이 오직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십니다.

이 아니라 당신의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걸핏하면

스스로를 하찮은 품팔이 꾼으로 여깁니다.

주님께서 혼쭐을 내지도 않는데

지레 겁을 먹고 벌벌 떱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들추며 자격지심에 묶여

풀이 죽습니다.

자녀 될 자격이 없다고 물러서는 걸

회개의 모습으로 오해합니다.

아버지를 괴롭히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라 싶습니다.

이리 못난 자식의 꼴을 보는 아버지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생각하기 바랍니다.

이야말로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위라는 걸 기억하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은 인간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주님 사랑은 너무 엄청나서 버겁습니다.

너무나 놀랍고 황송해서 무조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고

종아리를 맞는 쪽이 훨씬 마음이 가벼워질 듯도 합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사랑에

마음이 먹먹해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에 물들어 먹먹해진 가슴이 있어

이웃의 선한 존재로 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서두에 오늘 복음은

우리가 쉬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후회됩니다.

사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결코 이해되지 못할 부분이라고 고치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한없는 용서의 폭을 도무지 가늠할 수 없으며

아마도 세상 끝 날까지 알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짓겠습니다.

결단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를 의롭게 하신 사랑을 헤아릴 도리가 없다고

고백하겠습니다.

 

사순,

아버지의 기쁨을 위하여 믿음을 충전하는 때입니다.

당신 자녀의 품격과 품위를 배우고 익히는 때입니다.

지은 죄에 매달려

주님 자녀의 자긍심을 잃는 일은 가당치않습니다.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험난한 여정을 거쳐

요르단 강을 건넌 후에,

무엇보다 먼저 할례를 받아 새로워졌다는 사실을 깊이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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