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연중 제27주일 <아담처럼 하와만큼 사랑합시다>

(2021. 10. 3 창세 2,18-24; 히브 2,9-11; 마르 10,2-16)

 

세상에서 가장 오래 비아냥을 듣고

사람들의 입쌀에 올라 시달리는 인물은 하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물론이고

소위 무신론자들마저도

괜시리 삶이 무겁고 곤고해지면 원조들이 죄를 지은 탓에

희생의 값을 치루는 양 억울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때문일까요?

흔히 최초의 부부, 아담과 하와가 맨 날 지지고 볶으며

서로 미움과 애증에 얽혀 살았으리라고 짐작하는 듯합니다.

이를테면 선악과를 먹는 범죄를 저지른 후에

서로가 탓하고

핑계하던 세살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평생 으르렁대며 지냈을 것이라 상상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아담과 하와가 원수처럼 지냈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가 그 치욕의 사건을 잊었을 리가 만무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가리기에 급급하여

당당하지 못하게 굴었던 일을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허접한 핑계를 둘러대며 잘못을 모면하려 들던 구차한 모습,

급기야 원인 제공자를 고발하고 발뺌하던

치사한 기억을 결코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작은 거짓이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결말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

회한의 깊이 또한 가늠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아가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분명해 보입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눈을 치켜뜨고 마음이 굳어져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지경에 있었다면

그들은 땅으로 추방당한

그날, 당장에 등을 돌렸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꼴도 보기 싫다

남남으로 깨져서지냈을 게 틀림없다 싶은 겁니다.

...그랬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없었을 테고

세상은 그날로 마감되는

말세로 곤두박질쳤을 겁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에 빗대어 생각하니,

아담과 하와야말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결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여 살아냈던

지혜의 소유자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아담과 하와는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한다는

진리에 밝았던 지혜인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모세가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한 것은

결코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고 밝히십니다.

결혼에 관한 모세의 율법은

하느님의 뜻에서 모자란다고 딱 잘라 선포하십니다.

이렇게 단호히 거부하신 그분의 진의가

쉬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모세는 이 세상에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극찬을 들은 인물입니다.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사람”(신명 34,11)입니다.

그러니 그날 제자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분께 이토록 귀하고 아리따운 칭송을 듣고 있는 모세가

마음이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하느님께 진땀을 흘리며 탄원하고 협상했다는 뜻일까요?

 

세상은 주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그 진리를 잘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외면하고 있습니다.

모세조차 누리지 못했던

특은을 입은 은총의 복음인임에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분을 알 뿐 아니라

그분을 모시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에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일러주신 결혼에 관한 설명에

마음이 착잡해지고 쓰린 이유입니다.

한마디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마태 11,11)이라고

말씀해 주신 우리들의 처신이기에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는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이며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라 싶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세와 같은 세상의 대표입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그분의 뜻에 따라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지녀야 옳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부부의 연을

손익계산에 따라 협상하는 모습에는 통탄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말 많고 탈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좋은 낙원을 사모했기에

그분과 함께 지낸 기쁨이

영혼에 선명히 새겨졌던 아담과 하와처럼

사랑하는 일만 선택하라고 권하십니다.

아담처럼 아내의 허물을 감싸주며

하와만큼 남편을 따르고 돕는 삶을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알려 주십니다.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아담과 하와처럼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혼인의 의미를 깊이 새길 때,

진정 그럴 때

예수님 어깨에 얹힌 세상 짐은 절반쯤 덜어지리라 싶어

독신자는 오늘도 애타게 기도합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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