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연중 제32주일 <말씀, 그리스도인의 놀이터>

(2020. 11. 8 지혜 6,12-16; 1테살 4,13-18; 마태 25,1-13)

 

이런 세상을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고작 미물에 불과한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그 동안 쌓아 온 인간의 규범이 망가진 기분입니다. 하찮은 바이러스에게 바깥 생활을 차단당하고 보니 긴 세월동안 축적했던 인간의 사회론이 묵살당한 기분도 듭니다. 자존심 상합니다. 함께 어울려 형성하던 우리의 갖은 행위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로 둔갑해버린 이즈음, 삶의 활력소가 고갈된 느낌입니다. 감정을 풍요롭게 해주던 많은 것들을 금지 당했습니다. 함께하며 더불어 누리던 행복과 기쁨을 반납당하고 있습니다. 이 낯선 공간에서 어찌 지내시는지요?

위기입니다. 그럼에도 위기의 끝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를 겁먹게 하는데요. 사정이 이러니 더욱, 세상과 다른 모습을 살아내는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의 지혜가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이 칭찬하는 지혜로운 처녀들처럼 복된 기름을 마련하는 슬기가 필요할 것이라 싶습니다.

때문일까요?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질 정당한 보상을 분명히 일러주십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성실하고 정직하게 부지런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후한 보상이 따른다는 점을 명백히 하십니다. 물론 신앙생활은 보상을 바라는 것에 머물지 말아야 하는 존귀한 것이지만, 시대가 절박하고 시절이 수상한 만큼, 우리가 받게 될 보상에 대해서도 깊이 묵상하라는 이르심으로 받아들입니다.

 

삶은 악과의 끊이지 않는 전쟁입니다. 하느님을 향해서 깨어 살아가는 것은 악과의 힘든 투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악을 해명하지 않으십니다. 악을 설명하거나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지 않으십니다. 악한 세력을 없애지도 않으십니다. 다만 당신처럼 악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아버지께 청하라 하십니다. 그렇게 하늘의 힘으로 악에 맞서서 승리하라 하십니다. 악에 대한 승리는 악을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하느님을 향한 희망 안에서 생성되는 것임을 몸소 살아내라 하십니다. “내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 복종시키는 단호함을 챙기라하십니다. 부디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라고 강권하십니다(1코린 9,27 참조).

그런 의미에서 더욱 오늘 독서 말씀이 심오하게 들립니다.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말씀에 따순 위로가 듬뿍 담겨있으니까요. 그리스도인의 지혜는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지혜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예지라는 것, 오롯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사모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니까요.

이렇듯 이 난국에서도 주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정지된 듯 머물러 있는 이 막막한 일상도 결국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로마 8,29)는 주님의 약속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2천여 년 전에 보낸 바오로 사도의 편지글에 마음이 울컥합니다. 그때 사도가 마주했던 나날들이 지금 우리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오로 사도는 풀이 죽어 절망하거나 주님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숱한 역경과 환란을 믿음의 발판으로 삼고 탄탄한 희망으로 이겨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니까요.

이렇듯 믿음이란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주님 사랑에 무조건 복종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믿음이란 그 사랑이 때론 가혹할지라도 혹은 버거울지라도, 당신만을 생각하고 당신만을 위해서 살도록 뒤흔들어주시는 주님의 강한 사랑임을 기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던 우리입니다. 제발 한가하게 을 때릴 수 있는 여유를 우리는 갈망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이 시간도 충분히 은혜입니다. 은총의 때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서 주님과 훨씬 더 친해질 수 있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 없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결코 그분을 알아낼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알지 못하기에 더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기에 더 알고 싶어 해야 옳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에 성경을 더 읽고 읽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오붓하게 그분과 깊게 교류하려 애쓰며 지냅니다. 그분과 조우하며 힘을 얻어야만 이겨낼 수 있는 사안이 산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분께 아뢰며 봉헌하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임을 수없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손님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가게를 지나며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절망의 민낯을 보는 듯 했습니다. 많은 교우님께서 겪고 계신 어려움이 불쑥 다가왔습니다. 어서 두려움을 벗기고 희망의 옷을 입혀드리고 싶었습니다. 온 세상을 덧칠하고 있는 어둠의 그림자를 얼른 씻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교우님들께 간곡한 부탁을 드리려 합니다. 자주, 눈을 감고 하느님을 향하여 아빠 아버지라고 불러보기 바랍니다. 더 자주 하느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채워”(로마 5,5)주시는 성령을 체험하기 바랍니다. 좋으신 우리 아빠 아버지로부터 세상의 것들에 실망하지 않고 주저앉지 않을 수 있는 힘을 부여받기 바랍니다. 그래서 꼭 하느님의 계획과 판단은 결코 부당하지 않다는 것, 공명정대하시며 자애롭다는 것을 깊이 느끼시길 원하고 원합니다.

아울러 그 동안 시간이 없어서 미뤘던 성경읽기에 도전하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마련해주신 우리의 놀이터입니다. 그분께서 마련해주신 영의 놀이터, 성경 안에서 탄탄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말씀의 놀이터에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 중에도 최고의 축복을 얻어내는 비법이 숱합니다. 말씀으로 우리는 힘든 가운데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붙들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하는 비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주님께서 주신 삶의 교과서입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이 땅에서의 행복은 천상행복의 그림자일 뿐임을 알고 있는 지혜인입니다. 때문에 우리 안에는 하느님을 끝없이 갈망하는 마음이 자리해 있습니다. 저는 이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증이야말로 훗날, 이 땅에서의 여행을 마친 당신 자녀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영혼에 심어주신 내비게이션이라 믿습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엉뚱한 길에서 헤매지 않도록, 곧장 하느님 아버지를 찾아 귀향할 수 있도록 세워놓으신 하늘 길의 이정표라 믿습니다. 하느님 자녀의 자긍심으로 세상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붙들어주는 주님의 손길이라 믿습니다.

마음의 허기는 그분 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슬픔과 고통으로 구겨진 마음을 반듯하게 펴서 원상복귀 시킬 수 있는 능력자이십니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차가운 세상을 데우는 온기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응원에 힘입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것입니다. 일상 안에서 복음을 자분자분 살아내는 향기를 지닐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름답게 꾸며주신 세상을 원래대로 회복시키는 주님의 조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평신도 주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께서 꾸며주신 말씀 놀이터, 성경의 애용자가 되어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말씀으로 하늘의 힘을 충전 받아서 계속 타오르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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