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모든 성인 대축일

(2020. 11. 01 묵시7,2-4,9-14; 1요한; 마태5,1-12)

 

여름이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불어오는 바람이나 흩어져 날리는 낙엽을 보면서

어느 새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짧은 가을을 아쉬워하며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더 춥기 전에,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가을의 정취를 마음에 담아 보기 위해서

하늘 한 번 더 올려다보고,

또 구르는 낙엽 따라 종종걸음을 쳐 보는 일이라도 해 보는 것이

하느님께서 꾸며주신 이 계절을

흘려버리지 않는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복음은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알기는 아는데 과연

알고 있다는 의미를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지 이 가을,

높푸른 하늘이나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서 되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복팔단은 진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 가실 것이며,

또 그렇게 꿈꾸고 계시다는 하느님의 고백이십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라면

그 진복팔단의 말씀을 살아야하며

또 살아 낼 수 있다는 약속이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먼저 마련해 주시는 분이시니까 확실합니다.

우리는 오늘 독서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오늘 독서에서

모든 성인들의 숫자는 아무도 셀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아무도 셀 수 없는 그 무리의 입에서 외치는 소리를 전합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하늘에 들어가서 셀 수 없는 성인의 무리에 드는 일은,

결코 우리의 힘이 아니라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거저 얻는 은혜라는 증언인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한 결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선택으로 구원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으로 살고 계십니까?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군중들은

과연 그 말씀대로 자신의 삶을 바꾸고 변화되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많은 군중 가운데에

못 가진 가난한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이 가난해서 복되다는 사실을 깨닫고

평생을 행복해하면서 살았을까요?

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간 어떤 부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 자신의 불행을 알아차리고

회개하고 변화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십중팔구 그렇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느꼈던 기쁨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에

전혀 달라지지 않은 찌들린 삶 때문에 희석되었을 것이고,

부자들 또한 좋은 말씀이고 옳으신 말씀이라고 생각했을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여태까지 살아오던 방식대로

떵떵거리며 가난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살아갔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한 말씀 들려주신 것만으로는

결코 우리들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아시는 분께서 굳이

이 선포를 하신 까닭이 무엇일까 싶습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의 축일입니다.

우리들은 무수한 성인들께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서

성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그분들이 살아내신 가난과 희생과 고통을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들의 삶이 하느님으로 가득 차 있었으므로 복되다고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예수님의 행복선언은

내 안에서 하느님이 차지하시는 비율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가진 것이 적은 사람에게는 그만큼 하느님의 자리가 넓을 것이고,

자신의 것으로 꽉 찬 사람에게는

하느님께 내어드릴 자리가 좁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저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꼭 주목해 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세상의 기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진복팔단이라는 엄청난 삶의 기준을 주셨습니다.

얼핏 생각해 보면 사람이 어떻게 그리 살 수가 있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잘 새겨보면

마음이 가난하고 슬프고 온유해야하며,

자비로운데다가 마음까지 깨끗하여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될 때에만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내게 있는 작은 것을 사랑으로 나누려는 마음을 가졌다면,

이웃의 아픔을 보고 연민의 마음으로 함께 한다면,

내게 주어진 삶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순명하는 마음으로 온유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는 그분의 자녀라는 기쁜 소식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만하면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서

마음 놓아도 좋을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시지요?^^

저도 참 다행스럽고 감사하고 ....

정말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구원의 약속이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 싶습니다.^^

비할 바 없이 크신 하느님께서는

자잘한 우리의 일상에 함께하시면서 진정한 행복을 살기 원하시고

또 그에 더해서 상까지 주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오늘 위령성월의 첫날에

이 특별한 축복으로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와 함께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기를 꿈꾸십니다.

이 꿈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전부가 되고 싶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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