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연중 제26주일 <생각 바꾸기>

(2020. 9. 27 에제 18,25-28; 필리 2,1-11; 마태 21,28-32)

 

순교자 성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 선조님들께서는 미처 선교사도 파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학문으로 접했던 복음서에서 진리를 캤습니다.

그리고 천주 하느님만이 참된 신이심을 깨닫고 전하였으며

천주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내기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유례는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일입니다.

때문에 더욱 한국 교회의 자랑이며 특별한 주님의 은총으로 여겨집니다.

이야말로 우리 순교자들께서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뚜렷이 증거 하기에 그렇습니다.

 

순교자의 신앙을 더듬어 기리는 9월을 보내면서

저는 오늘 또 다시 백색 순교의 삶을 되새기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까이에서

진정한 백색순교를 살으셨던 이태석 신부님을 기억합니다.

신부님과의 빠른 이별은

우리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지만

신부님께서 떠난 자리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결실들은

참으로 백배의 열매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신부님의 삶이 진정한 백색 순교였다는 사실을 증거해 줍니다.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상대의 기쁨을 위해서 스스로를 녹이는 삶이

곧 백색순교라는 점을 선명히 일깨워줍니다.

오늘 우리도 소소한 일상 안에서

사랑을 위해서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주님의 말씀을 살아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살아간다면

주님께서는 기꺼이 우리 삶의 기록부에 백색 순교자라는

영예의 단어를 삽입시켜주시리라 헤아리게 됩니다.

 

우리는 곧잘 하느님께서 왜 선악과를 만들어서

아담과 하와를 헷갈리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애시당초 이 생겨나지 않도록 조처하셨다면

어느 누구도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창세기에는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이 사실은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순명하며 지냈을 때는

어느 무엇도 판단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뱀은 간사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뱀을 피하지도 않고 무시하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뱀의 이야기에 솔깃해진 하와는 스스로 생각합니다.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보이는 것이

슬기롭게 해 줄 것같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후 하와의 순수한 본성이 변질됩니다.

변명하기에 급급하고 남 탓을 하느라 전전긍긍하며

핑계를 댈 궁리를 하게 됩니다.

이른바 매사가 불안하고 초조하여

마침내 하느님 앞에서 숨어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왜 선악과를 만들어서

인간이 유혹 당하게 하셨는지 불만스러워 하지만

사실 하느님의 명령을 지키기만 했더라면

이런 상황은 생겨났을 리가 없는 예외사항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렇듯 하느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금하신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

즉 판단의 올무에 빠져들지 않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아울러 창조주이신 당신 외에는

세상의 어느 인간도 판단할 권한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이 진리는 선악과를 먹은 후에

아담과 하와가 서로 네 탓에 열중했다는 사실에서 극명히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선과 악을 분별하여 살아가기 원하십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나 악을 구별하여 판단하는 일은 죄입니다.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단정 짓는 일은 판단입니다.

순교자들이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하거나

그들의 악한행동을 저주하는 마음을 가졌더라면

결코 순교의 칼날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반항하고 저주하며 저항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교는

선악을 분별하되 결코 판단하지 않는 지혜의 결실이라 깨닫습니다.

 

선과 악은 지금도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의 분별력은 수시로 테스트 당하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악한 세상을 판단할 권한이 없습니다.

때문에 죄를 지은 사람이 곧 악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죄에 걸려든 인간의 허약함을 보듬어 이해하고 함께하며

끝까지 사랑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부지런히 악을 뿌려대고 돌아다니는 사탄의 유혹이 좌르르 깔려 있습니다.

사탄의 유혹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 분별하여 파악하되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지혜가 큰 힘이 됩니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단죄하는 버릇을 떨어내는 것만으로

우리는 백색 순교의 첫걸음을 떼게 됩니다.

선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이 작은 노력을 몹시 기뻐하실 것입니다.

기꺼이 교회의 목숨을 바쳤던 순교자들처럼

세상이 외면하는 진리를 흔쾌히 살아냈던 이태석 신부님처럼

귀한 결단을 내렸다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우리 생각이 주님의 뜻에 맞갖을 때에 어둠을 향해 질주하는 세상은

마침내 진리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곰곰 생각하고 깊이 고민하여

진리의 길로 돌아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 생각의 변화를 주님께서 간절히 고대하고 계신 이유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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