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 <진리의 일꾼>

(2020. 9. 20 지혜 3,1-9; 로마 8,31-39; 루카 9,23-26)

 

요즘 우리나라의 하늘색이야말로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고 흡족해하셨던

바로 그 색깔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좋은 계절에 우리는 순교자 성월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오늘 한국의 순교자들께 마음을 모아 경하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지혜서의 말씀은 순교자의 영광된 모습을 환히 밝혀줍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 또한

순교자들을 위한 승리의 팡파레로 들어도 무방하리라 싶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부풀어 오른 탓일까요?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주님의 말씀에도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

그날 그 영광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도 이겨낼 각오가 생깁니다.

내 십자가는 물론이고

남의 십자가까지도 기꺼이 나눠질 넉넉한 다짐을 하게 됩니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피의 순교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매일의 일상에서 낮아지고 겸허해지는

백색순교를 살아야한다고 말합니다.

소소한 일상 안에서 부딪히는 모든 일에서

하나하나 주님 뜻을 성실히 살아냄으로써

목숨을 걸고 순교했던 분들처럼

주님께 떳떳하고 자랑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대단한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놓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생활이란 것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소소한 것에 시달리다보면

시시한 것에 흔들리기 일쑤이고

가벼운 것들에 휘둘려 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늘 주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낮아지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손해를 당하면서도 묵묵한 것은 바보가 되는 것으로 여깁니다.

마침내 조상님의 원죄를 탓하며

이런 구실을 달고 저런 핑계를 대며 지나쳐 버립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은

우리가 사색하며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잃게 만듭니다.

우리 귀는 새로운 정보에 빼앗겼습니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공산품에 눈이 멀었습니다.

오직 소비하라는 세상의 권고를 따르느라 몸을 혹사합니다.

오직 즐기라는 세상의 유혹에 현혹된 영혼은 길을 잃었습니다.

때문에 백색 순교라는 말은 우리 귓전에서 헛돌 뿐입니다.

그저그저 대충대충 적당적당

세상과 충돌하지 않고

유난떨지 않고 지내는 것이 복음적 삶인 줄로 오해하기까지 합니다.

참으로 하늘이 통곡할 현상입니다.

 

세상은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곧 하느님의 권능이며 힘이며 노동이라는 사실은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요한 5,17)이라는

주님의 말씀으로 분명히 드러나는 사안입니다.

부지런히 일하시는 하느님이신 까닭일까요?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그저 바라보는 장식품이 아닌 일꾼으로 빚으셨습니다.

일꾼이라니, 좀 성에 차지 않아 하실 분도 계실 수 있지만

사실인 만큼 고쳐 말하기가 곤란합니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부여하신 직무가

에덴 동산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고 전하고 있기에 그러합니다.

아마도 아담이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하늘에서 계속 살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잘 헤아려 실천해 나갔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른 일들을 즐겁게 수행하며 지냈을 것입니다.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그분의 크심을 찬미하며

우리에게 주신 만물의 이름을 지어주는 노동에 기쁘게 동참하였을 것입니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인간이 잃어버린 복된 노동의 작업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그 복된 직무를 다시 수행하여

축복의 영예를 다시 되찾도록 하기 위하여

하느님나라의 윤리와 도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당신 길을 따라 와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고 말합니다.

한편 뱀의 말에 솔깃해서 하와가 쳐다 본 선악과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으며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고 전합니다.

하느님과 인간은 똑 같은 것을 보았지만 달랐다는 얘기입니다.

이야말로 매사

하느님의 마음과 우리 생각이

천지차이로 벌어질 수 있다는 일깨움이라 생각됩니다.

하느님께서 참 좋았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진실로 그렇다라는 결정적 고백입니다.

그에 비해서 하와가 해 줄 것처럼느꼈던 것은 하와의 상상입니다.

실체가 아닌 허상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진실인 반면

그럴 것처럼 느껴지는것은 가상이며 환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하와는 자신의 느낌과 감정에 치우쳐 하느님의 명령을 저버렸습니다.

우리도 세상이 보여주는 것들에 현혹되어

그럴듯한느낌에 이끌려 살아간다면 진리를 놓치고 말 것입니다.

일상에서 승리하는 백색 순교의 삶을 살아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세상을 사랑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세상에 당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인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을 살리기 위한 당신의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 선택된 노동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1등을 하기 위해서만 골몰합니다.

성적이 뛰어나고 학벌이 좋고 좋은 직장을 갖고 건강하고 떵떵거리면서

오래오래 살아가기 위해서 주님을 이용할 생각만 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 교회를 세우셨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당신아들의 피를 주고 얻은 당신의 자녀이기에 너무나도 소중해하십니다.

때문에 무엇에든 기꺼이 우리 편이 되어 도와주십니다.

그 심정을 헤아려드리는 성숙한 자녀가 되어야합니다.

한 순간, 마음의 동요가

복음의 길을 벗어나게 한다는 사실에 깨어 살아야합니다.

아주 소소한 느낌과 감정에 붙잡힐 때

하와처럼 주님을 저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맑고 높고 청량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순교자들을 생각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렸던 그 결단이

어이 그리 귀하고 영광된 행위인지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편이 되시어 무엇이든 해결해 주시는 주님께

이거 달라응석부리지 않고

더 달라투정하지 않고

주저 없이 주님의 편에 섰던 바로 그 행위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믿음도 쑥 자라나

주님 편에 우뚝한 믿음의 용사가 되어야 할 이유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소소한 일상 안에서

주님의 일에 바지런한 노동자가 되어

진리이고 참이신 주님께

상을 받는 백색 순교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2 2020년 연중 제32주일 <말씀, 그리스도인의 놀이터> 월평장재봉신부 2020.11.06 14
91 2020년 모든 성인 대축일 월평장재봉신부 2020.10.31 11
90 2020년 연중 제30주일<교회의 모든 모임은 당신의 것입니다> 월평장재봉신부 2020.10.23 18
89 2020년 연중 제29주일<전교는 이웃을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월평장재봉신부 2020.10.16 13
88 2020년 연중 제 28주일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월평장재봉신부 2020.10.10 11
87 2020년 교구 수호자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월평장재봉신부 2020.10.03 18
86 2020년 연중 제26주일 <생각 바꾸기> 월평장재봉신부 2020.09.26 7
» 2020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 <진리의 일꾼> 월평장재봉신부 2020.09.19 9
84 2020년 연중 제24주일 <그리스도인 삶의 원칙, 용서> 월평장재봉신부 2020.09.12 6
83 2020년 연중 제23주일 <복음 파수꾼> 월평장재봉신부 2020.09.03 12
82 2020년 연중 제22주일 <‘구원’은 최고의 선물입니다> 월평장재봉신부 2020.08.27 10
81 2020년 연중 제21주일 <만능열쇠> 월평장재봉신부 2020.08.22 7
80 2020년 연중 제20주일 <“주님, 그렇습니다”> 월평장재봉신부 2020.08.13 5
79 2020년 연중 제19주일 <순명의 기도의 사람, 엘리야> 월평장재봉신부 2020.08.08 11
78 2020년 연중 제18주일 <너희가 그들에게> 월평장재봉신부 2020.08.01 10
77 2020년 연중 제17주일 <듣는 마음> 월평장재봉신부 2020.07.25 14
76 2020년 연중 제16주일 <그래서 더, 알렐루야!!> 월평장재봉신부 2020.07.17 9
75 2020년 연중 제15주일 <믿음 백배로 키웁시다> 월평장재봉신부 2020.07.11 10
74 2020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믿음의 내공> 월평장재봉신부 2020.07.04 19
73 2020년 연중 제13주일<교황님, 힘내세요> 월평장재봉신부 2020.06.25 2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