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연중 제19주일 <순명의 기도의 사람, 엘리야>

(2020. 8. 9 1열왕 19,9.11-13; 로마 9,1-5; 마태 14,22-33)

 

강론을 준비하던 중에

불현 듯 엘리야 예언자의 일생이 떠올랐습니다.

좋은 말,

옳은 말,

그럴 듯한 말로 적어 내리던 글이 슬금 부끄러웠습니다.

멋진 강론보다

엘리야의 외로움을 살피는 글을 적고 싶습니다.

엘리야는 불가마를 타고 승천한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세상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인물은

에녹과 엘리야 단 두 사람뿐입니다.

때문일까요?

우리는 곧잘 그가 감당해낸 고달픈 사연을 간과합니다.

 

성경은 엘리야를 소개하면서

길앗의 티스베에 사는 티스베 사람 엘리야”(1열왕 17,1)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그가 태어난 곳이 별 볼일 없는 촌구석이었으며

그의 가문은 세상에 내세울만한 번듯한 조상마저 없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더불어 성경은

그가 겁도 많고 마음도 약한 인간이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데요.

엘리야가 우리와 똑같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승천사건이 더욱 흥미롭습니다.

우리보다 특출 나지도 않고

우리보다 대단한 구석도 없는 엘리야를

하느님께서는 왜 그렇게 무슨 이유에서

그토록 특별대우를 하신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또 이 유명한 예언자의 예언서가 성경에 없다는 사실마저 의아해집니다.

때문에 엘리야만의 비법이 무엇일지 알아내고 싶습니다.

엘리야의 묘수를 배우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 그 비법을

하느님의 말씀이 내리면 망설이지 않고 순명했던 자세에서 만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리면

선뜻 나서서 당당하게 말씀을 선포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겁을 먹고 두려워했던 인간 엘리야,

악랄한 왕비 이자벨이 무서워서 줄행랑을 치고 말았던 못난 사나이가

자신의 사사건건을 주님께 말씀드리며 의탁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엘리야를 이스라엘이 아닌 사렙타로

멀리 멀리 보내셨던 이유도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너무 가엾어서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까닭이 아닐까 싶을 지경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구구절절

엘리야의 과거지사를 거론하지 않는 이유는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나약함이나 허약함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고백이라 여겨집니다.

이를테면 엘리야에게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났지만 이집트인으로 교육되었던 탓에

지난날을 말끔히 씻어내기 위해서

자그마치 사십년이나 떠돌며 지냈던 하느님의 수업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주님을 만나서 극적으로 변화되었던 바오로 사도처럼

십년을 꼬박 고향 타르수스에서

홀로 버리고 깨지고 돌아서는 연습이 필요치 않았다는 일깨움을 건집니다.

엘리야처럼 우리가

주님을 믿고 주님께 순명한다면

주님의 일을 하는 데에 하나도 부족하지 않다는 이르심을 캡니다.

아무리 겁 많고 힘없고 못났더라도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선포인줄 믿습니다.

 

저는 엘리야를 생각하면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

땅에 붙은 듯기도하는 자세입니다.

카르멜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을 몸을 수그리고 얼굴을 양 무릎 사이에 묻었다”(1열왕 18,42).

이것은 삼년동안의 혹독한 가뭄에 먹을 물조차 귀했던 이스라엘 땅에

드디어 비가 올 것이라는 예언을 선포한 후 엘리야의 모습입니다.

당대 최고의 예언자가 갖춘

낮고 낮은 자세에서

세상의 대표자인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자세를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엘리야가 하늘의 비를 멈출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춘 하느님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허접하고 갑갑하기 이를 데 없는 아합 왕에게마저도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어 대한 사실도

배워야할 귀감의 행동이라 새기게 됩니다.

믿음 안에서

도무지 아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교활하고 못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우습게보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 선택된 예언자였기에

수없이 많은 난관을 만나고 겪어야 했습니다.

외롭고 힘들고 막막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야말로 오늘

주님께 선택되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핵심의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날 엘리야처럼

세상이 겁나고 무서워서 떨릴지라도

주님께 의탁하는 믿음으로 주님을 향할 때에

세밀하게 우리의 갈 길을 알려주시고

자상하게 우리의 할 바를 일깨워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을 섬긴 까닭에

한없이 외로웠던 엘리야의 심정을 더듬으며

외로운 예수님과 함께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청해봅니다.

 

죄에 빠진 세상을 위하여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으로

모세처럼 엘리야처럼 바오로처럼 기도하여

건강하고 튼튼한 그러나

조용하고 부드러운주님의 음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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