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3주일
(2019. 12. 15 이사 35,1-6.10; 야고 5,7-10; 마태 17,10-13)
주님께 의심을 품지 않는 자의 행복이라는 말씀은
참으로 우리의 행복이 단순한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파견된 주님의 사자이며
앞서 주님의 길을 닦는 일꾼입니다.
대림 시기는
주님의 마음이 되어
세상에 그분을 전하는 때입니다.
주님을 전하는 사람의 할 바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향해 다가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이 아이 걸음처럼 더디고
아이처럼 힘이 약해도 실망할 까닭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만,
참고 기다림에 끈질긴 믿음을 칭찬하시고
진정으로 주님께서 “해방시키실” 그분의 백성이라고
우리를 추켜 주시니까요.
주님의 웃음을 만날 그날을 기대하며
“오실 분은 바로 당신 예수님 이십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칠 수 있는 우리이기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크다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실하시니,
말씀하신대로 단순해져야 합니다.
그것은
별 볼일 없는 우리들이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성령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는 일입니다.
예언자를 능가하는 하느님의 자녀로써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믿음의 선조, 그 누구도 누리지 못했던 축복을 가졌음에
기뻐 뛰며 신이 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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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주일입니다.
과연 어떤 것이 자선입니까?
자선을 하되 주고 나서 후회한다면 제대로 된 자선입니까?
사실 ‘이웃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자선의 으뜸입니다.
내 삶이 각박한 가운데에서도
이웃을 위해서 나누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자선입니다.
나를 바라보지 않고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자선을 하되 요청하지 않을 때는 주지 않는 것도 옳지 않는 것입니다.
받는 사람 기분 나쁘게 하며 주는 것은 더욱더 아니지요.
그런데 이런 경우가 받는 사람 입장에서
종종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는 이나 받는 이나 서로 모르게 하는 것은 훌륭한 자선입니다.
그래서 자선을 할 때는 세 가지가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주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야 하고, 받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야 하고,
주는 물건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는데 여러분 동의하십니까?
그리고 최고 단계는 ‘받는 이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진정한 자선이어야 합니다.
베풀고 나서 후회하지도 않고 생색을 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인사치례에 연연하는 것도 못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저 예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정성을 모으고 사랑을 더할 뿐입니다.
자선을 베푸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자선을 고대하는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자선은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좋은 것을 골라서 드리는 행위이며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다했다는 겸손의 고백으로 귀결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대림기간,
우리는 사랑이신 그분을 기다리는 기쁨으로 가득해야 옳습니다.
오늘이 특별히 ‘기쁨의 주일’인 까닭입니다.
이 기쁨을 나누는 행복도 갖는 한 주일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