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그리스도왕 대축일 <빛의 나라>

(2019. 11. 24 2사무 5,1-3; 콜로 1,12-20; 루카 23,35-43)

 

하느님의 계명은 사람이 완전히 지킬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따져보면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사람들이 지킬 수 없는 계명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하느님의 말씀대로는 결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천하게 타락해 버린 인간 쪽의 문제가 훨씬 깊은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율법을 주신 근본적인 이유와

그 율법을 제대로 지키기 못하는 이스라엘인들의 허물을

로마서를 통해서 상세하게 일깨웁니다(로마 1,18-2,20 참조).

이어

하느님께서 인간이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주신 이유는

율법이 없었다면 나는 죄를 몰랐을 것입니다”(로마 7,7)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스스로 하느님의 기준에 걸맞도록

한 점의 흐트러짐 없는 삶이 불가능한 나약한 인간을 위해서

베푸신

하느님 뜻이 완성되는 모습을 전합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오로지 그분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바라고 기다리던 인류를 위해서

몸소

말씀하신 율법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시키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뭔 이런 일이 있나싶습니다.

물론 하느님의 아들을

빈정거리고조롱하며 모독했던 사람들에게 솟는 분노입니다.

그런 한편

죽어 마땅한 죄인이 던진 한 마디에

아무런 이의도 달지 않고

아무런 조건도 없이

빛의 나라를 약속하신 예수님의 답변을 들으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싶습니다.

 

+++

오늘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던 우편 강도의 고백은 진실입니다.

그의 고백처럼 우리는 모두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죄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아서,

남들의 원망을 사는 죄가 아니라서

의인인양 살아가는 우리 양심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서

벌 받아 마땅하다고단죄당하는 사람들

벌을 받아도 싸다고 취급당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해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숨겨진 모든 죄를 아십니다.

그리고 고백하기 원하십니다.

그분의 오심은

인간의 죄를 들춰내기 위한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죄를 들춰내어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악의 무게에 따라서 중벌을 내리기 위해서도 아니며

하나도 숨김없이

우리의 죄를 찾아낼 때에만

잔 죄마저 하나도 남김없이

말끔히

완벽하게 씻어줄 수 있기 때문이라 헤아립니다.

교회가 누누이 누누이 고백성사를 권하는 이유라 확신합니다.

티 없이 깨끗한 영혼

하느님의 정의에 한 치도 모자람 없는 영혼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임을 믿습니다.

하여 우리는 모두가

하느님의 철저한 정의 앞에서 당당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 진리를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당당하게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꼭 그분께로부터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는 그분의 응답을 들을 것입니다.

이 뻔뻔스러운 요구에

이토록 허술한 은총이라니.......

똑똑하게 이치를 따지는 사람에게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는 사람에게는 우스개처럼 들릴 것입니다.

스스로의 도덕성을 내세우며 남의 죄를 콜콜히 따지는

자칭의인에게는 마뜩찮은 바보놀음으로 비칠 것이 뻔합니다.

 

, 때문에 복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사람

무조건 하느님께만 의탁하는 모자란 사람에게만

기쁘고 신나는 소식임을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

 

그날 주님의 머리 위에 붙어있는 죄명 패에는

지금 우리의 모든 죄들도 빠짐없이 기록되었습니다.

줄줄줄...

끝도 없는 인간의 죄악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를 모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조리 아들 예수님께 덮어씌웠으니

오늘까지도

명패에 죄목을 적어내리는 붓끝의 먹물이 마를 새가 없을 것만 같습니다.

 

하느님의 인간사랑은

이렇게 고통스럽고 처참하고 처절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 사랑도

아프고 힘들고 괴로울 수 있다는 복음의 진리를 새깁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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