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연중 제33주일 <허물어내시기 전에 먼저 허물어버립시다>

(말라 3,19-20; 2테살 3,7-12; 루카 21,5-19)

 

그날 주님께 예루살렘 성전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던 이들의 음성에는

자랑스러움이 묻어있었을 듯합니다.

마흔 여섯 해 동안에 걸쳐 이루어낸 역사,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웅장한

하느님의 성전을 건축해낸 긍지와 자부심이 읽힙니다.

값비싼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한 일도

스스로도 대견했을 것이라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확, 찬물을 끼얹으십니다.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이렇게 딱 잘라 무안을 주십니다.

내심 그 성전이 십시일반의 자원 예물

알뜰히 모은 재원으로 세워졌으며 값비싼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고

뽐내던 마음이 얼마나 뜨악하고 민망했을지, 제 얼굴이 다 화끈해집니다.

사실 성전이 신자들의 정성이 모인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는 점을 감안하여서라도 애썼다라거나

수고했다라는 정도의 맆서비스를 해 주시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듯싶습니다.

 

물론 주님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우리로써는

그날 주님의 말씀을 다각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도 이스라엘의 전통을 헐어내고

새로운 복음을 세울 것이라는 예언으로 풀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또 요한 사가의 설명을 빌어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요한 2,21)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말씀의 초점을 예수님의 부활에 맞추어도 무난히 해석될 터입니다.

 

저는 오늘 하느님의 성전인 교회가

곧 주님의 몸이라는 점을 키워드로 잡아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성전인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결코 화려하고 웅장한 겉모습만으로 평가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경고하신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날 주님께서는

멋들어진 성전의 외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성전을 거룩한 척 위장하고 대단한 척 포장하며

들락대며 거드럼 피우는 이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셨습니다.

그런 가짜 신앙인들 탓에

성전에 죄악이 그득 쌓인 것을 보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죄,

감추어진 죄들로

이제 곧 멸망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런 성전의 진실을 보셨습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시선도 매한가지입니다.

오직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겉을 치장하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도 한결같습니다.

세상의 현란한 경제론과 경쟁논리의 우거진 밀림을 벗어나라 하십니다.

더 화려하고

더 높아질 궁리를 끊어내라 하십니다.

매사를 손해와 이익으로 따지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헐어버리라 하십니다.

갖은 세속적 욕심으로 그득찬 속내를 치워내라 하십니다.

세상에서 존경받는 자랑스런 경력도

어디서나 뽐낼만한 대단한 관록도

일절, 심판 날에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히십니다.

주님의 성전인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세상에 물들어 살아간다면

손수 허물어 버릴 수밖에 없다는 지엄한 경고를 들려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늘 아멘이라고 화답하며 동의합니다.

언제나 무엇에나 신앙적 자세를 견지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렇게 마음만은 충분히 당신의 뜻을 이해합니다.

생각만은 철저히 당신을 따를 것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뿐입니다.

돌아서면 세상에 물들어 지냅니다.

그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며 신앙의 딜레마로 인정해 버립니다.

자신이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공을 들였는지를 자랑하고

얼마나 값지고 귀한 것들을 지니고 있는지를 뽐내려듭니다.

마침내 말씀대로 행하기를 두려워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에 겁을 내며 나중’ ‘나중으로 미루어 버립니다.

나중이 과연 언제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이 꿈꾸고 희망하는 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인은 이 땅에서 하늘을 살아가는 축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당신을 향한 믿음은

허울 좋은 겉모습으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십니다.

이제는 겉치장에 치중하는

삶의 관점을 허물어버릴 것을 명령하십니다.

믿음인은 겉이 아니라

마음이 새로워진 사람임을 밝히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손에 허물어지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허물어내는 결단의 사람입니다.

복음인은 주님의 관점에서 매일 마음속을 청소하는 사람입니다.

결코 마흔 여섯 해가 지나도록 묵혀두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이 주간,

주님의 귀한 성전이 되도록

옛것들을 몽땅 부수고 허물어 버리기 원합니다.

우리들이 마음을 청소하느라고 쿵쾅대는 소리가

온 세상에 쩌렁쩌렁 울리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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