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일 <우리 삶이 주님을 감동 시킵니다>
(2019. 9. 8 지혜 9,13-18; 필레 9-10.12-17; 루카 14,25-33)
루카 사도는 오늘 그곳에는 예수님을 좇는 거대한 무리가 있었다고 전합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던 덕이었을 텐데요. 그곳에 온 대부분의 사람은 예수님의 기적을 구경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소문으로 들었던 놀라운 기적을 보게 되리라 기대하며 숨죽여 주님을 주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딴전을 부리시는 듯합니다. 뭔가 신기하고 멋진 일을 기대하고 몰려든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계시니까요.
그날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사람의 심사가 거북했을 겁니다. 하물며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이나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도 죄다 당신 제자의 자격이 없다는 말씀에는 도대체 뭔 뜻인지... 어안이 벙벙한 채 걸음을 돌리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폭탄선언이 많은 이들을 실망하게 했을 것이란 얘깁니다. 어리둥절하고 망연자실한 마음은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을 듯한데요. 아연실색하여 주님을 말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을 것도 같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씀으로 사람들을 돌아서게 하시는지, 따지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우리는 주님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르심이 결코 가족의 사정을 외면하는 냉혈한으로 살으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또한 주님 말씀의 심지는 당신 제자가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의 우선순위를 밝힌 것이라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때문에 우리는 오늘 복음말씀을 들으면서 어리둥절해하거나 뜨악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과연 당신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어떻게 삶이 변화되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주일마다 미사에 참례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지만 그저 막연하게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생각할 뿐, 주님을 좇는 길에 놓인 십자가는 외면하지는 않는지 캐묻고 싶어집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이라면서도 정작 예수님과는 ‘남’처럼 지내는 것은 아닌지 따져 볼 것을 강권하고 싶은 겁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의 삶이 법의 테두리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교회의 전례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거나 교리를 열심히 공부했다는 사실만으로 마치 주님을 잘, 제대로 따라가는 줄 착각하는 일이 흔하니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에 관한 지식을 정녕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형성의 최고봉인양 여기는 오해가 만연하니 말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나를 믿으라’는 말씀을 네 번 하신 것으로 기록합니다. 그에 비해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스무 번이나 하셨다고 밝힙니다. 이야말로 주님을 아는 것을 넘어서 제대로 된 구원자임에 감격할 때에만 비로소 당신을 제대로 따를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사실 예수님의 공생활을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매우 풍부했던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님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전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보잘것없음에만 주목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출신성분을 같잖아 했고 희생을 비웃으며 하느님의 자비심을 폄하시켰습니다. 때문에 주님께서 내리신 바리사이에 대한 평가는 냉정합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마태 15,8)
하느님에 관해서 아는 것과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바리사이들은 머리로는 하느님을 열심히 연구했지만 그분께 마음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하느님에 관한 지식이 모자랐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분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맺지 못했던 까닭입니다. 결국 주님과 어긋난 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에 저와 여러분의 영혼에 아픈 찔림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분을 향한 사랑은 그분 곁에서 머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향한 믿음은 그분의 걸음을 좇아 곧게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공식은 무조건적인 따름으로만 증거되기에 따름이 없는 믿음은 공허한 외침이며 허울에 불과한 까닭입니다.
식물들은 새 잎을 계속해서 내기 위해서 오로지 빛을 향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식물도 빛을 향해 나아가는데 어째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빛이신 주님을 향해 돌아서 따르는 것이 이리도 힘이 드는 것일까요? 주님께서는 눈부신 빛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데 말입니다.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인데도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오늘 아주 중요한 믿음의 선을 그어봅니다. 말씀을 듣고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으로 생각하는 잘못을 지적해 드립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은 곧 따름이라는 진리를 거듭 거듭 강조해 드리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지만 자신이 가진 것이 아까워서 포기하지 못하면 주님을 향할 수 없습니다. 매 주일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를 열심히 한다 해도 주님과는 도무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길을 간다하면서도 그 길에서 겪게 될 피해를 계산하게 된다면,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수긍하면서도 지금 당장의 이익과 손해를 따지게 된다면, 결국 주님께로 부터 돌아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안에 품은 바알, 땅에서의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마음을 깨부수지 못한다면 슬퍼하며 주님 곁을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은 개개인의 능력이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존경받는 삶을 살았다고 해서 주님의 나라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믿음은 세상의 것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외로운 결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의 주님께서 베푸신 사랑에 감격하여 오직 그분만을 소중해 하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한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영생의 비밀을 알고 있기에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제 영원한 생명을 향한 길을 향한 갈림 길에서 혼란스러워하지 맙시다. 주님의 길로 들어섰으니 돌아서지 맙시다. 주님만을 바라보며 힘껏 나아갑시다.
그날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말씀을 소수의 특정한 사람에게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군중”에게 똑같이 이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어느 누구에게도 숨기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요구하다는 증거라 믿습니다. 주님의 보편적인 공정하심은 모든 이에게 한결같으시다는 진리라 헤아립니다.
때문에 그분의 제자인 우리 삶이 무척 중요합니다. 내 생각과 내 말과 내 행위가 세상과 이웃에게 그분을 드러내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최상의 도구임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자잘한 우리의 일상이 그 분께 기쁨을 드리고 하느님을 감동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자꾸 불어나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