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아브라함은 주님을 정말로 사랑했구나!>

(창세 14,18-20; 1코린 11,23-26; 루카 9,11-17)

 

십일조에 대해 거부감이 커서

마치 교회가 신자들을 갈취하기 위한 방법처럼 여기는 분들을 봅니다.

사랑이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시니

우리네 팍팍한 경제 사정을 백번 감안하실 것이며

결단코 그렇게 혹독한 봉헌을 강요하실 리가 없다는

지론을 펼치는 분들도 만납니다.

단어와 어휘는 다양하지만

십일조는 무시해도 좋은 구약의 지침일 뿐이라는 속뜻은 공통됩니다.

한마디로 봉헌금이 아깝다는 심사입니다.

때문일까요?

헌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가차 없이 돈 밝히는 신부로 추락합니다.

사제들이 되도록 헌금 이야기를 덮어 넘기려 하는 이유일 터입니다.

제 마음도 그랬습니다.

헌금이 내 돈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굳이 서로에게 민망한 헌금 이야기를 꺼내서

서먹할 이유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을수록

헌금의 소중함을 알려드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단단해졌습니다.

사제에게는 헌금이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며

믿음의 고백이란 사실을

일깨워야 할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 글을 적는 지금 저는 돌 맞을 각오를 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인들이 아브람처럼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수입에서 제일 먼저

하느님의 몫을 떼어 봉헌하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하여 몇 배로 되돌려 채워주시는

주님 축복의 증거자가 수두룩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십일조는

하느님께서 먼저 구상하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전해 듣는 현장이야말로

하느님께 최초로 가진 것의 십분의 일을 봉헌했던

역사적인 기념일이며

아브라함이 십일조 봉헌의 원조라는 얘깁니다.

 

결국 오늘 우리를 힘들게 하고

골 아프게 하는 교무금이라는 등짐을 지게 된 것은

하느님 탓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탓인 셈입니다.

그날 아브라함이 제 맘대로 십일조를 바치는 통에

지금 우리 입장이

이렇게 빼도 박도 못하도록 곤란해진 꼴이니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일은

하느님께서 그날 일을 흘려버리지 않고

매매 간직해 두셨다는 점입니다.

마침내 사백년이나 흐른 뒤에 불쑥,

모세에게 십일조 규정을

이스라엘 백성의 의무 사항으로 선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날 멜키세덱에게

십일조를 봉헌 받으시던 하느님 마음이 콩콩콩 뛰었을 것이라 추리합니다.

그날 멜키세덱으로부터 축복의 말을 들었던

아브라함이 신이 나서

자기가 지닌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가려 바치는 모습에

우리 하느님 마음이 황홀했을 것이 분명타 싶습니다.

그날 주님께서는 비로소 아브라함이

당신의 말씀에 곧이곧대로 따랐던 이유가

무섭고 겁나서가 아니라

당신을 향한 사랑이라는 걸 알아차리셨을 것이란 얘깁니다.

당신을 향한 감사와

당신을 향한 사랑과

당신의 기쁨을 위해서 바쳐진

뜨거운 사랑의 표현에 무덤덤했을 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훗날 모세를 통해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일조를 요구하신

하느님의 속내는

그날처럼 진한 사랑의 고백을 두루 만나고 싶다는 뜻이라 살펴집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당신의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매일 당신의 몸과 피로 우리를 살리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사랑을 알고 또 누리는 당신의 자녀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매일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에 인색합니다.

어떠한 희생도 불사하며

모든 것을 기꺼이 감수하며

오직 상대의 행복을 추구하는 희생적 사랑은 손해로 생각합니다.

그분께로부터 받은 것을 내 것인양 독차지 하려 합니다.

당신의 피와 살로 힘을 얻고 살면서도

그 빵을 더 주십시오라고 졸라대고 있습니다.

그저 그날 주님께

자신들의 필요를 청하고 만족해했던 사람들처럼

병을 고쳐주고 빵으로 배불려주는 신통한 능력자로 치부하는 형태입니다.

사랑을 빙자하여

그분의 것을 뺏고 속여 먹으려는 사기꾼 심보에 사로 잡혀 있는 꼴입니다.

 

사랑은 몽땅 주고도 더 주고 싶어서 안달합니다.

제일 좋은 것을 골라 주려 애를 씁니다.

그날 아브라함의 십일조 봉헌에

주님께서 감동하신 이유라 믿습니다.

그 진한 사랑 고백을 듣고 싶은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십일조 조항을 선물하셨습니다.

주님과 사랑에 빠져서

그분의 기쁨을 위하여

영혼이 달뜨는 우리이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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