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과부이야기도 사실 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렇게 구차한 삶의 사람이
헌금 좀 안 바친다고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그 행위를 칭찬하셨지만
다른 대책을 세워주시지 않으십니다.
왜?
그들의 선택은
하느님 우선주의에 충실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단 두 렙돈 그 전부를 바치는
가난한 과부의 봉헌과
포로생활 중에 잠깐 주어지는
단맛에 현혹되지 않는 젊은이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현실과의 타협안에 숨어있는 복병을
깨어 경계하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느님 우선주의!
이 시대에 가장 귀한 삶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