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9 22:32

가정교리 25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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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리 제 25 과 - 예수 그리스도는 정말로 하느님이신가요?

 

《네! 분명히 하느님이셔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일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예수님이 하느님에 관해 가르치시고, 보지 못하는 이, 듣지 못하는 이, 중풍에 걸린 이들을 치유하시며 심지어 죽었던 이들을 다시 살리시는 것을 보고, 그분께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참으로 하느님이셨다는 사실을, 그분이 부활하신 후에야 완전히 깨닫게 되었어요.》(『Youcat 프렌즈』p.50)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5-8)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탄생하신 사건을 일반적으로 ‘성탄’聖誕 이라고 표현합니다. 신학적으로는 하느님의 영원하신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의미로 ‘육화’肉化 라고 하기도 하고, 영원으로부터 하늘나라에서 성부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성자 예수님께서 땅으로 내려오셨다는 의미로 ‘강생’降生 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예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는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이 고백처럼 예수님은 영원으로부터 성부 하느님에게서 나셨습니다. 요한 복음서가 이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1-3)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설합니다. “누구의 ‘말씀’입니까?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아들 자신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 없이 계신 적이 없습니다. 아들 없이 계신 적 없던 분께서 아들을 낳으셨습니다... 시작이 없이 나신 분에게는 처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들이고 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분은 나신 분인데 어떻게 처음이 없는가? 그분께 처음이 없다면 어떻게 나신 분일 수 있는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나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한낱 인간에 불과한 자에게 하느님께서 어떻게 나셨는지를 묻는 것입니까?”(『설교집』196,1)

 

예루살렘의 치릴로 성인은 ‘육화의 신비’가 우리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께서 우리의 인성人性을 받아들임 없이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천상의 빵이신 분께서 굶주린 이들을 먹여 주시려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교리교육』XII,1.8.13)

 

치릴로 성인은 예수님 안에서의 ‘신성神性(영어: Divinity)과 인성人性(영어: Humanity)의 결합’이 우리 구원에 핵심적인 사건이라고 설명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지 않으셨다면, ― 성인의 표현을 빌려 ― 그분이 우리의 인성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약하고 불완전하며 죄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인간의 본성만으로는, 영원하신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신 예수님께서 인성을 받아들이심으로써 이제 우리도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강생의 신비에서 그리스도의 ‘겸손’을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겸손이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 죄로 인해 넘어진 인간에게 손을 내미신 것입니다. 우리는 넘어졌고, 그분은 넘어진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분의 자기 낮춤은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분의 인간적인 탄생은 겸손하면서도 경이로운 사건입니다. 겸손함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이요, 경이로움은 동정녀에게서 나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동정으로 그분을 잉태하시고, 동정으로 낳으셨으며, 낳으신 이후에도 동정으로 남아 계셨습니다.”(『신경 해설』III,6)

구약성경은, 하느님께서 죄로 인해 넘어진 인간에게 끊임없이 손을 내미신 역사입니다. 그 역사의 절정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사건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겸손’(영어: Humility)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