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5 22:48

가정교리 19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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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리 제 19 과 - 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불러요?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또는 “아버지”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고 그분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에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셨지요.

 

이 세상에 많은 아빠들은 용감하고 정직하고 다정다감하며 너그러워요. 어떤 아빠들은 너무 바빠서 함께 있지 못하기도 해요. 또한 참을성 없고 자기만 생각하거나 화를 잘 내는 아빠들도 있지요. 그렇지만 그런 아빠를 둬서 슬프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빠, 늘 좋은 아빠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분은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이셔요.》(『Youcat 프렌즈』p.42)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의 창조주라는 의미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주님께 이렇게 보답하느냐?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백성아! 그분은 너희를 내신 아버지가 아니시냐? 그분께서 너희를 만들고 세우시지 않았느냐?(신명 32,6)

 

“우리 모두의 아버지는 한 분이 아니시냐?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지 않으셨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서로 배신하며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더럽히는가?”(말라 2,10)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맏아들 이스라엘”(탈출 4,22)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셨기에 더더욱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특히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 고아와 과부들의 아버지이시며, 이들은 하느님 사랑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에 찬미 노래 불러라. 구름 타고 달리시는 분께 길을 닦아 드려라. 그 이름 주님이시다. 그분 앞에서 기뻐 춤추어라.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거처에 계시다. 하느님은 외로운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사로잡힌 이들을 행복으로 이끌어 내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반항자들은 불모지에 머무른다.”(시편 68,5-7)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의 근원이시고 초월적인 권위를 지니셨으며, 동시에 당신의 모든 자녀를 자비와 사랑으로 보살피신다는 점입니다. 하느님의 부성父性은 또한 모성母性의 모습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내재성 그리고 하느님과 당신 피조물 사이의 친밀함에 더 주목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지상의 부모님들에 대한 인간적인 경험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인간은 부모님에게서 처음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인간 부모님들이 그릇될 수도 있으며 부성父性과 모성母性의 모습을 왜곡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성별을 초월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적인 부성父性과 모성母性의 근원이며 척도이시면서도 이것을 초월해 계십니다.

 

한편으로 예수님께서는 전혀 새로운 의미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로 계시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당신 외아드님과의 관계에서도 영원히 아버지이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 8,14-17)

 

초세기 교부 떼르뚤리아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라는 이름은 일찍이 아무에게도 계시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누구시냐고 여쭈었을 때, 다른 이름을 들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되었습니다. ‘아들’이라는 이름은 ‘아버지’라는 새 이름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기도론』3,1)

 

치프리아노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처신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주님의 기도』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