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3 11:57

가정교리 37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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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리 제 37 과 - 우리는 왜 부활절을 기념하나요?

 

《예수님을 사랑하던 이들은 무덤으로 달려갔어요. 하지만 무덤은 텅 비어 있었어요! 그곳에 온 여인들은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누군가가 시신을 훔쳐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던 것이었어요. 예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에요!》(『Youcat 프렌즈』p.73)

 

예수님의 부활은 “봐라, 내가 다시 살아났다!”라고 하면서, 모든 사람들 앞에 화려하게 나타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네 복음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무덤이 비어 있는 사건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그 사실을 알립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이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아마포가 놓여 있고, 얼굴을 쌌던 수건이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되살아나신 다음에, 당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파들, 율법학자들, 로마 병사들, 빌라도에게 나타나시지 않고,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사람들에게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 같아서는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을 주고 죽음으로 이르게 했던 사람들에게 버젓이 다시 나타나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직접 알려주는게 맞는데,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부활 신앙입니다. 우리는 2000년 전 이 세상을 살았던 한 인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로 이제 우리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더라면 그리스도교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기억하는 많은 위인들처럼 예수라는 인물도 역사에 그렇게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그분은 더 이상 그저 훌륭한 인물 정도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아드님이시며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되살아난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한 번도 그런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결국 다 죽어야 했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다 끝이었습니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했고, 그래서 예수님 이전에는 부활 신앙이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이 모든 것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분은 이미 살아계실 때 죽었던 사람을 되살아나게 하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에 가셔서 죽은 소녀의 손을 잡고, “탈리타 쿰!”(마르 5,41) 하고 말씀하시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나서 걸어 다녔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몹시 놀라 넋을 잃었습니다.

 

또 한 번은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는데, 마침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메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슬퍼하는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과부에게 “울지 마라.”(루카 7,13) 하고 위로하신 다음,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 7,15)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루카 7,16) 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 번은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인 라자로가 죽었을 때, 이미 라자로가 죽어서 동굴 안에 묻혀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동굴 앞에서 큰 소리로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 하고 외치시자, 죽었던 라자로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습니다. 이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의 군중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신 뒤 당신을 찾아온 군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39-40)

 

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요한 10,10-11.15.17)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무려 세 번씩이나 예고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에 관하여 예언자들이 기록한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질 터인데, 그들은 사람의 아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며 침 뱉을 것이다. 또 채찍질하고 나서 그를 죽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루카 18,31-33)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 가운데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라자로를 살리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그러자 마르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7)

 

마르타의 이 고백이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온전히 믿음으로 고백할 때에만,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정말 기쁜 소식이 될 것이며, 우리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확신도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