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2 13:40

가정교리 45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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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리 제 45 과 - 예수님은 어떻게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시나요?

 

《하느님 앞에서는 오로지 그분 뜻에 올바른 것만 있게 돼요. 우리의 모든 죄, 나쁜 행실과 악한 마음, 증오와 폭력, 이 모든 것은 사라져 없어져요. 하느님 곁에는 오로지 선한 것만 남아요.

 

심판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언제나 판결을 내려 주어요. 하느님의 심판은 결코 이 세상 모든 것을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 인간을 위해 하느님이 베푸시는 마지막 큰 선물이에요. 그분은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을 마련하실 것인데, 그곳에서 모든 이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거에요.(묵시 21,4 참조)》(『Youcat 프렌즈』p.85)

 

요한 묵시록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있다.”(묵시 1,17-18) 이 말씀에 따라 우리는 예수님이야말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오실 심판관이자 왕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달력(=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림시기의 첫날인 대림 제 1 주일이고,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연중 제 34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지냅니다.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다시 오시면, 당신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으실 것이고, 모든 민족들이 예수님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분께서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입니다.(마태 25,31-32 참조)

가톨릭교회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당신께로 이끄심으로써 당신의 왕권을 행사하십니다. 왕이시며 우주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오신 것입니다.’(마태 20,28)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교회는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기 창립자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알아봅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와 함께 봉사하는 이 소명에 따라 삶으로써 ‘왕의 품위’를 실현합니다.”(786항)

 

예수님께서는 세상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세상 종말에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왕이시지만, 교리서의 가르침대로 그분의 왕권은 이 세상의 왕들과는 달리 종으로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왕들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궁궐에 앉아 있는 분이 아니라, 마태오 복음서의 말씀처럼 굶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이며,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 안에 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생의 마지막 날, 왕이신 예수님께 심판받게 될 기준도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주었느냐가 되는 것입니다.(마태 25,31-46 참조)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최후의 심판 때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 저지른 죄나 잘못, 악 등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로지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 주위의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었는지, 그러지 않았는지 만을 물으십니다. 최후의 심판의 기준은 우리가 지은 죄가 얼마나 많고 큰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작은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작은 이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작은 이들이라고 하면 으레 아픈 사람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물론 몸과 마음이 아프고 병이 들고, 장애를 지니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작은 이들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고 병이 없고, 장애가 없고, 가난하지 않고 소외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큰 사람들일까요?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들입니다. 누구나 때로는 몸과 마음이 아프고, 병이 들고, 죄와 잘못을 반복하고, 상처를 주고받고, 실수하고, 소외되고, 눈물을 흘리는 그런 약하고 부족한 인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고, 그렇다면 마태오 복음서 25장의 예수님 말씀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이 됩니다.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이든,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든, 나와 맞지 않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든 간에 관계없이,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그 모든 사람들이 바로 작은 사람들이고, 오늘 나에게 오신 예수님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럴 수도 있겠네!’ 라는 생각으로 끝나버릴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매일 내 남편의 모습으로, 내 아내의 모습으로, 내 자녀의 모습으로, 내 친구의 모습으로, 내 직장 동료의 모습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에게 오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냥 살아간다면, 우리도 마태오 복음서 25장에서 주님의 왼쪽 편에 서 있던 사람들처럼, 우리가 언제 주님께 그렇게 해드리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녀 마더 데레사의 말씀처럼, 우리는 ‘한 번에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그 순간 그 한 사람에게 어떻게 하느냐가 나의 최후의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가 누구든 간에 그는 나에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이고, 내가 사랑을 주어야 할 사람이며, 지금 나에게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하느님께서는 최후의 심판 이후에 우리에게 일어나게 될 일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3-5)

 

베자의 아프링기우스는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설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증언하고 계십니다. 당신께서 영원히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당신은 그들의 주님이 되시며, 그들은 당신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하여 성도들의 무리가 당신의 성전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영원한 기쁨을 상으로 주시는 이들과 영원한 축복으로 빛나게 해 주시는 이들의 울음을 그치게 하시고, 그들의 눈에서 친히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묵시록 주해』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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