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7 09:40

가정교리 43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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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리 제 43 과 - 예수님은 왜 계속 지상에 남지 않으셨나요?

 

《예수님은 언제나 모든 사람, 특별히 당신의 백성 곁에 머물러 있고 싶어 하셨어요. 그리고 이제는 하늘 위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시어 언제 어디서든 우리와 함께하고 계셔요.

 

예수님이 떠나실 때 제자들은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느꼈을 거에요. 이런 제자들을 위로하시며 예수님은 말씀하셨어요. “나는 너희보다 먼저 떠난다. 그곳에서 너희가 쉴 곳을 마련해 두겠다. 그리고 그곳으로 너희를 데리고 오겠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그 사람이 “하느님의 집으로 되돌아갑니다.”라고 말하는 거에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 다른 약속을 하셨어요.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 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18) 그리고 이 약속을 지키셨어요. 예수님은 약속대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어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성령은 우리를 지켜 주시고 위로해 주시며 언제나 우리를 사랑해 주셔요.》(『Youcat 프렌즈』p.82)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요한 14,2-3)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성인은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설했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집에 거처할 곳이 많이 없다면,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 그들보다 먼저 그리로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곳에 많은 거처가 완전히 준비되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에, 그분은 당신께서 떠나심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다. 그분이 떠나시는 것은 저 위의 거처들로 가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안전하게 갈 수 있는 통로를 준비하고, 전에는 지나갈 수 없었던 길을 평탄하게 닦기 위해서입니다.

 

예전에는 죽을 운명의 존재들이 결코 하늘로 갈 수 없었습니다. 어떠한 육신도 천사들이 사는 순수하고 지극히 거룩한 영역에 발을 디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당신께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을 성화하시어 육신이 하늘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느님 앞에 서기 위하여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언제나,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아버지 안에, 당신을 낳으신 분의 면전에 계셨고 또 계실 것입니다.”(『요한 복음 주해』9)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설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준비하러 떠나시는 것입니까? 우리를 준비시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분께서 우리를 떠나시면 어떻게 우리를 준비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그 거처들이 준비되려면, 의인들이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분을 ‘본다’면,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께서 떠나게 하시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하십시오. 그분께서 감추어져 있어 믿음이 움직이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면 자리가 마련됩니다.”(『요한 복음 강해』68,3)

 

예수님께서는 같은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요한 14,18-20)

 

요한 크리스소토모 성인은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설했습니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는 곳에 너희도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요한 13,36),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2)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참 뒤에 일어날 일이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동안을 위하여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다지 위안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곧 당신의 현존을 약속하십니다.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그러나 당신께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함께 계시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암시하십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이라는 말은 ‘내가 너희에게 다시 오겠지만 예전처럼 매일 너희와 함께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요한 복음 강해』75,2)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지상에 남지 않으시고 승천하신 이유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계속 지상에 남아 사셨다면, 그 시대와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예수님께서 모든 시대와 모든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존하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예수님의 이 현존 약속은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지닌 방식으로가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의 현존을 알아볼 수 없지만,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분의 현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처럼 보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예수님의 현존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