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6 13:33

가정교리 42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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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리 제 42 과 - ‘하늘로 오르신다’는 뜻의 ‘승천’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40일 동안 함께 머무셨어요. 그 후,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께 되돌아가셨어요. 성경은 그분이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에 오르셨는데, 그때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고 알려 주고 있어요.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건을 예수님이 ‘승천’, 즉 ‘하늘로 오르셨다’고 고백해요.

 

‘승천’은 예수님이 단순히 사라지셨거나 “‘어떤 장소로 여행을 떠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지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길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영원한 시간을 향하여 놓여 있는 길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향하는 길이지요. 예수님은 당신의 승천으로 이 세상의 어둠에서 하느님의 영원한 빛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게르하르트 로핑크)》(『Youcat 프렌즈』p.81)

 

요한복음서는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2.14)

이렇게 태초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사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시고, 원래 계셨던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것을 ‘승천’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놀라운 신비의 사명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 이후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지상에 머무르시다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나라로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 제자들이 성령을 받게 되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오르셨습니다.

 

‘승천’이라는 말은 우주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아주 생소한 말입니다. 승천昇天은 말 그대로 ‘하늘로 오르다’라는 뜻인데,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3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하느님이 계시는 하늘나라이고, ‘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이고, ‘땅 아래’는 악의 세력이 지배하는 저승 세계였습니다.

 

이 3층 구조의 세계관으로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보면, 예수님은 원래 하느님과 함께 ‘하늘’에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땅’에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30여년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와 똑같이 죽음을 겪으시고, ‘땅 아래’로 내려가셨습니다. 거기서 3일을 계시다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일으키셔서 ‘땅’으로 다시 올라오시게 되었고, ‘땅’에서 40일을 지내시다가 원래 당신이 계셨던 ‘하늘’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이 승천으로 예수님은 당신의 구원 활동을 다 마치시고 하늘나라로 가신 것입니다.

 

구약의 시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내 주군께 하신 말씀.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주님께서 당신의 오른쪽에 계시어 진노의 날에 임금들을 쳐부수시리이다.”(시편 110,1.5)

 

사도행전 7장은 스테파노가 순교하기 전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스테파노에게 이를 갈았다.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사도 7,54-56)

사도 바오로도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에페 1,20)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은 이 말씀들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성부 오른편이라는 말을 우리는 천주성의 영광과 영예라고 이해합니다. 하느님이시며 성부와 한 본체로서 모든 시대 이전에 하느님의 아들로 존재하시던 분께서 강생하셨다가 육신이 영광스럽게 되신 후에, 그 육신을 지니고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신앙 해설』75)

 

베네딕토 16세 교황님도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과 같은 맥락으로 예수님의 승천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께서 구름에 싸여 가신 ‘곳’을 시편 110편 1절과의 연관성 아래,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심 (또는 서 계심)으로 묘사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를테면 하느님께서 당신 어좌를 놓으시고 그 어좌 옆에 예수님께도 한자리를 주신 것과 같은, 멀리 떨어진 우주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다른 여느 장소 가운데 한 곳에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존재하는 모든 공간의 전제 조건이자 근본이시지, 당신 자신이 그 공간 가운데 하나인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모든 공간의 주인이자 창조주로서 계십니다. 그분의 현존은 공간적인 것이 아니라, 당연히 신적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심’은 공간에 대한 이러한 하느님의 권능에 참여함을 의미합니다.”(『나자렛 예수 2』p.350-351)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승천은 공간적으로 예수님이 이 지상을 떠나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간을 넘어서 하느님의 힘과 생명의 친교 안으로, 하느님의 다스리심 안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떠나가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권능과 힘에 의해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하여 현존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