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2 14:11

가정미사 강론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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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성 바오로 사도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사랑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1코린 13,5)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권고 『사랑의 기쁨』에서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설했습니다.

 

“바오로 성인은 사랑의 찬가에서 사랑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자기 것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바오로의 다른 서간에도 이와 같은 생각이 나타납니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필리 2,4) 성경에서 분명히 이야기하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헌신보다 자기 사랑이 더 고귀한 것인 듯, 이를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101항)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자신의 이익만을, 자기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은 자신의 이익만을, 자기 것만을 끝없이 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는 세상입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른 사람의 것을 돌보아 주는 사람은 어리석어 보이고 ‘바보’라고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한 헌신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더 앞세워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헌신이 훨씬 더 중요하고, 고귀한 가치이며 그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에 맞갖은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사랑은 예수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제자들에 대한 헌신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사랑받으려는 것보다 사랑하려는 것이 사랑에 맞갖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사랑에서 으뜸인 어머니들은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려고 합니다.’ 결국 사랑은 정의가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무상으로 베푸는 것으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최고의 사랑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상으로 모두 내어 놓을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관대함이 정말 가능하겠습니까? 분명히 가능합니다. 복음이 이것을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102항)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사랑받으려는 것보다 사랑하려는 것이 사랑에 맞갖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의 본질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사랑에서 으뜸인 어머니들은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려고 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어머니들은 자기 자녀에게 항상 뭔가를 주려고 하지, 뭔가를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자녀에게 주는 사랑은 정의가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무상으로 베푸는 것입니다.

 

정의대로라면 어머니가 자녀에게 해 준 만큼 자녀도 어머니에게 해줘야 하고, 자녀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머니도 더 이상 자녀에게 뭔가를 해주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어머니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자녀가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어머니는 자녀에게 항상 먼저 사랑을 줍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 사랑은, 교황님의 말씀대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최고의 사랑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자녀가 건강하게, 착하고 바르게, 잘 자라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자녀들은 어릴 때 부모님의 이런 사랑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그저 받기만 하면서 자라납니다. 그리고 커서 언젠가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 그때서야 부모님이 나에게 주셨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랑을 부모님께로부터 한없이 받았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부모님의 자녀를 향한 이러한 사랑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에서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무상으로 모두 내어 놓을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관대함이 가능한데, 복음이 그것을 요청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우리가 부모님께 받은 것은 모두 다 거저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모두 다시 당신들이 돌려받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랑을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은 모두 다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모두 다시 당신이 돌려받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랑을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참된 사랑은 자기 이익만을, 자기 것만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