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8 14:14

가정교리 39과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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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24,13-35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지 사흘째 되던 날, 두 제자가 제자 공동체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라는 마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동료들을 떠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의 공동체는 예수님이라는 스승님을 함께 모시던 제자 공동체였는데, 스승님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거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들은 공동체를 떠났고, 떠나는 길에도 계속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루카 24,14) 그러는 중에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길을 걸으셨습니다.(루카 24,15) 그러나 그들은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합니다.(루카 24,16) 그들은 왜 3년이나 함께 지내며 모셨던 스승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3번에 걸쳐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미리 예고하셨지만,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많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예고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물으십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라고 반문합니다.(루카 24,18) 여기서 ‘머물렀다’고 번역한 그리스어 동사 ‘παροικέω’(paroikeo)는 일반적으로는 그 뜻도 지니지만 ‘이방인으로 살다’라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두 번째 뜻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이 동사 바로 앞에 ‘홀로’ 라는 뜻의 ‘μόνος’(monos)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문 그대로 직역을 하면 이렇습니다. “당신 홀로 예루살렘에서 이방인이고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몰랐습니까?”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의 순간들에 정말 예루살렘에서 당신 홀로 이방인이었습니다. 제자 가운데 한 명은 당신을 배반했고, 나머지 모든 제자들도 당신이 붙잡히시자 다 도망쳐 버렸으며, 수석 제자인 베드로조차 당신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빌라도 앞에서는 군중들조차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고 외쳐댔습니다. 그 군중들 중에는 분명히 예수님께 치유를 받았거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감명을 받았거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순간에 빌라도 앞에서 “이 분은 아무 죄가 없소!” 하고 당당하게 외치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방인이셨습니다. 그 어떤 여관 주인도 해산 직전의 젊은 부부를 맞아주지 않아서 예수님은 사람의 집이 아니라 가축의 집에서 태어나셔야 했고, 태어나서 처음 누운 곳도 따듯한 안방목이나 침대가 아니라, 말구유, 즉, 가축들의 밥통 위였습니다. 공생활 중에도 그분은 늘 이방인으로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셔야 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 이것을 분명히 적어놓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9-11)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얼마나 이방인이신지를 직접적으로 이렇게 표현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

클레오파스도 질문 안에서 예수님을 그저 한 사람의 이방인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두 제자는 성경을 풀이해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나눈 뒤에야 그 이방인이 자신들의 스승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계셨지만, 그들에게 예수님은 한 사람의 이방인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두 제자처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의 여정에서 예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걸어가시지만, 우리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이방인 취급을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시다. 내 삶의 순간순간에 항상 그분이 주도권을 쥐고 나를 이끄시는 주님이십니까? 아니면 내가 항상 주도권을 쥐고 그분은 필요할 때만 찾는 이방인 같은 분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