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중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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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일(나해, 2024211)강론>


 

초등학생 시절 설날의 최고 관심거리는 맛있는 음식과 세뱃돈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설은 이렇게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한 즐거움을 체험하는 날이었습니다. 몇 년이 흐른 청소년 시절에는 세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배하고 빨리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영화를 보거나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는 이성 친구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흥분과 떨림의 시간이었습니다.

나이가 든 후 설은 부모님, 형제들와 함께 지나온 1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살 것을 다짐하는 날이 됩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생각의 차이를 발견하고 상대에 대한 오해를 키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30대가 지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형제와 친구들 사이에서도 직장과 월급에 따른 빈부의 차이, 자녀들의 성적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나 우월감을 느낍니다. 또한 처가나 시댁에서 설을 지내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합니다. 가족, 친척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치관, 정치적 노선 등에서 차이를 느끼고 결국 다름을 확인합니다. 그러다 크게 다투거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서로 등을 돌리고 다음 설부터는 만나지 않겠다.’라는 결심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신의 병을 고쳐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치유를 청하고 실제로 나병이 낫게 됩니다.

저는 오늘 강론에서 치유를 통하여 참다운 인간의 삶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보다 모든 어려움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찾아 나선 나병 환자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 싶습니다.

1960년대 어린 시절, 가난했던 빈민들 가운데는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잔반들 일명 꿀꿀이죽을 먹거나, 종교 단체에서 배급해주는 음식으로 곯은 배를 채우며 연명하던 이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그들 중에는 아주 두려웠던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나병 환자와 전쟁 중 다쳐 장애인이 된 상이용사들이었습니다.

특히 낙동강을 끼고 그 주변에는 나환자 촌들이 많았는데, 동네에 나병 환자가 나타나면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 대문을 걸어 잠그고 개를 풀어 놓습니다. 나병 환자를 본 개가 짖으면 동네 모든 개가 자지러지게 짖어대면서 삽시간에 동네는 공포 분위기로 바뀝니다. 모든 동네 사람이 숨어서 나병 환자가 동네를 떠날 때까지 감시합니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가장 외면을 당한 이들이 바로 나병 환자였습니다.

그래서 나환자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란 시를 보면 인간들을 등지고 산천을 떠돌며 보리피리를 불면서 어린 시절 고향의 산과 강, 그리고 언덕들에 대한 추억을 한 맺힌 그리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어땠을까요?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한 차별과 냉대를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나병 환자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추방당해 외롭고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앞에 나타난 나병 환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해 죽어도 좋다는 용기를 갖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냉대와 모욕 그리고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비웃음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이런 용기와 의지 덕분에 아마도 예수님의 자비를 얻게 됐을 것입니다. 그의 열정과 확고한 믿음이 그를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시켰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참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모든 치욕과 어려움을 극복한 이들 말입니다. 2013년에 선종하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영웅인 넬슨 만델라(1918~2013)가 그랬습니다. 그는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18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자신에게 침을 뱉고 고문하면서 온갖 치욕을 줬던 백인 정치인과 공무원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흑인과 백인이 힘을 모아 새로운 국가를 만들자고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만델라는 용서와 화해를 통해 사랑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우리도 자신의 부끄러움, 감추고 싶은 환부, 자신의 수치스런 죄를 계속 깊숙이 감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 솔직한 모습, 현재의 이 고통을 가감 없이 주님 앞에 드러내 보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마음으로 외치는 것입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도 나병 환자처럼 부끄럽고 송구스럽지만 있는 그대로 우리 환부의 상처를 그분께 보여 드립시다. 그리고 그분 자비의 손길을 기다립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