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의 회당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고쳐주시는 이야기를 오늘 듣게 됩니다. 복음서들은 종종 마귀를 가리켜 ‘더러운 영’이라고 부릅니다. ‘더러운 영’이라는 표현은 마귀 자체가 더럽고 추한 영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마귀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표현입니다. 즉 마귀는 인간을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추락시키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러운 영이 하는 말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나자렛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이 말은 “우리 일에 상관 말고 떠나 달라”는 뜻입니다. 마귀가 자기의 프라이버시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프라이버시란 아무도 침범하거나 간섭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인데, 예수님께서 다가오시니 더러운 영은 그분을 침입자로 여기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또한 마귀는 예수님의 정체를 잘 아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하고 말합니다. 더러운 영은 예수님을 몰라서 더러운 영이 아니라, 너무도 잘 알지만 그분을 사랑하지 않고 싫어하고, 대신에 이 세상에 들러붙어 있기 때문에 더러운 영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머리로는 잘 압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아는 주님을 나는 정말 사랑하는가? 나도 많은 경우 주님과 상관없이 살고 있고, 나아가 주님이 침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프라이버시를 주장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기적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아님을 묵상하게 되는 오늘입니다.
마르코복음 9장에서 제자들이 “저희는 왜 악한 영을 쫒아낼 수 없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그런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깨어 기도하는 것만이 악에 대항하는 길이라는 말씀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