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습니다.”
오늘은 2021년 새해의 첫 주일이자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공현’(公顯)이라는 말은 ‘드러나게 나타내심’을 뜻합니다. 즉 오늘은 우리 구세주로 탄생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당신 자신을 만백성 앞에 드러내셨음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그래서 사실 ‘공현’이라는 의미에는 동방박사들의 경배, 예수님의 세례 그리고 카나의 혼인잔치 사건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전례의 관심은 특별히 동방박사들의 경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예전엔 그래서 이 날을 ‘삼왕내조(三王來朝) 축일’이라 불렀습니다.
이 옛 명칭은 오늘 복음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마태오 복음사가에게 이 세 방문객의 정체가 왕이었는지 박사들이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경에서 ‘박사’로 번역되는 ‘마고스’(magos)라는 그리스어는 ‘현자’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복음사가의 눈에 이 현자들이 분명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더 중요한 점은 그들이 “‘와서’(來) ‘경배했다’(朝)”는 두 동사에 있습니다. 그들은 ‘왔습니다’. 어디에서? 동방에서 왔습니다. 동방은 먼 나라들을 뜻합니다. 즉 그들은 구세주의 별을 보고 먼 길을 걸어 찾아온 이방인들입니다. 물리적인 거리로도 심정적인 거리로도, 이 이방인들에게는 쉽고 편한 길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왔다’는 말뜻 안에는 온갖 굴곡의 긴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왔지만 오히려 지척에 있던 유다인들은 그분을 찾아오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그들은 와서 ‘경배했습니다’. 경배했다는 말은 자신들이 와서 만난 그 아기가 참으로 구세주이심을 믿고 받아들였음을 뜻합니다. 옛 교부들의 설명처럼, 왕이시고(황금) 참 하느님이시며(유향) 참 인간이신(몰약) 구세주의 탄생을 그들은 알아보고 선물을 드리며 경배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경배하다’는 말에는 참된 신앙인의 자세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자처하던 헤로데도 예로부터 예언된 참 임금의 탄생을 어렴풋이 감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도 “가서 경배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이 아기는 자신의 안위를 위협하는 거추장스런 존재일 뿐입니다. 헤로데는 임금의 자리를 더 숭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재물이 신(神)이 되고 거기에 눈이 멀어 하느님을 점점 잊어가는 세대입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내가 편히 즐기며 사는 데 거추장스러운 존재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들 아래서 별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빛이 없어서 어두운 것이 아니라 눈이 멀어 어두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는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은 듯한(제1독서) 세상에 또다시 희망을 선포합니다. 주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어 그 길을 걷도록 촉구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어두움이 아무리 깊어도, 항상 어딘가에 눈을 들어 ‘별’을 보는 사람들이 있고 그분을 찾아 먼 길을 떠나는 이 시대의 동방박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는, 선택받은 민족으로 자부하던 유다인들처럼, 신자라는 명칭만 있고 “와서 경배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닌지요? 참된 신앙의 길이 아니라 쉽고 편한 길만 찾고, 그분이 아닌 다른 무엇을 경배하는 삶은 아닌지요? 신앙은 용기와 인내가 필요한 긴 여정입니다. 우리가 찾는 그분을 뵈올 때까지 깨끗한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이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