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경향잡지에 연재하고 있는 교부들의 신앙」 내용입니다. 


생명의 길 :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김현 안셀모 신부

 

코로나19라는 무서운 역병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참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BC(Before Corona)AC(After Corona)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팬데믹(Pandemic, 전염병의 대유행)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세상은 이전과는 같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지금, 인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길 위에서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로마 5,3-5)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사람들의 목마름, 사람들의 근원적인 갈망을 채워주기 위해 생겨났다는 어느 노교수의 말처럼, 질병의 고통과 경제의 어려움에서 내일을 걱정하며 고민하고 있는 이웃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희망이라는 생명의 길, 새로운 길을 제시해줄 소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카파도키아 삼총사중의 막내인 니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yssenus, 335?-395)너희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사랑해야할 가난한 이들2In illud : Quatenus uni ex his fecistis mihi fecistis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그 길을 모색해 보고 싶습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대 바실리우스(Basilius Magnus, 329-379의 동생입니다. 형 바실리우스를 아버지와 스승으로 존경하고 따랐던 그레고리우스는 형 바실리우스의 사회적 가르침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azianzus, 329-390)와도 깊은 우정으로 사회적 연대의식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사랑해야할 가난한 이들2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도 그 맥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1,600여 년 전 그레고리우스는 다음의 복음말씀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이 걸어 가야하는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를 떠올렸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5-40 참조)

 

이 복음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축복을 내려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심판을 피하고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선택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길을 바라보며 그 길을 향해 헌신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길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온정의 손길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축복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계명은 특히 지금 이 순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생계를 위해 몸부림치는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면서 우리 가운데에서 복음이 실현됨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보여주신 일치와 단결, 즉 하나 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 복음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자연적 본성을 따르는 것입니다. 강도를 만나서 죽게 된 불행한 사람을 최소한의 연민도 없이 길가에 버려두고 온 사제와 레위 사람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루카 10,30-36 참조).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 만약 본받는다면 우리도 결코 죄로부터 결백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느끼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말이 최소한 이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래서 말로써 그들의 상처를 덮어주고 사랑의 노래로써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옳은 일입니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과 그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림과 현실이 다르듯, 말과 행동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하는 주님의 계명을 거슬러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다 그들을 격리시켜 놓고 먹을 것을 주었다고 그들에게 해야 할 바를 다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일들은 자비도 동정도 없는 그저 보여주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럴듯하게 선으로 포장해서 결국은 그들을 우리의 삶 밖으로 추방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삶의 시작도 끝도 모든 이에게 한가지다”(지혜 7,6)라는 말씀처럼 인간은 모두가 예외 없이 자연의 순리에 따르게 마련이고 이 법칙에서 예외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오만한 생각을 하지 말고 오히려 두려워하십시오”(로마 11,20)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겸손되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만으로 말미암은 첫 번째 희생자가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이웃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인간 안에 내재된 하느님의 모습과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에 빠진 이웃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다가가 사랑의 나눔이라는 애덕의 실천을 통해서 세상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할 생명의 길이자, 하느님의 길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는 오늘날,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 되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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