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2019 11 6일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일부 교회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내 식으로, 내 마음대로 예수를 재단하고, 예수에게 온갖 정체 불명의, 원산지도 알지 못할 옷가지들을 덕지덕지 입혀 놓은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커피숍 간판보다도 더 많은 십자가 간판이 이 땅에 버젓이 세워져 있지만, 밤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사방 팔방을 둘러 보면, 어느 한 곳에서 교회 건물이 꼭 보이는 이 땅이지만,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멋스러움과 눈부심을 따라 해보기 보다는, 그를 건물 한 중간에다가 박제해 놓고, 그저 머리 조아리고, 그 앞에서 무릎 꿇고, 두 손 모으는 대상으로만 전락시켜 버렸다. 그들은 예수를 돌, 나무 등으로 조각해놓거나, 그를 포르말린으로 박제해 놓아버린, 그래서 예수를 한낯 박물관의 전시물이나 미술관의 예술품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온갖 추함과 역겨움을 끌어 안고 있는, 그래서 눈물 나게 서럽도록 아름다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예수의 삶이 참으로 멋져 보인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스스로에게, 하늘에게, 당신의 어머니에게, 그리고 당신을 스승이라고 여기며 따르던 이들에게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다간 예수가 빛나는 태양처럼 눈부시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멋스러움과 그 눈부심은 순간적인 감정으로나 여기면서 살아야지, 그 멋스러움과 그 눈부심을 흉내 내어 보려고 하거나, 따라 해보려고 하면, 그 순간부터는 바보가 되어버린다고, 세상은 그를 손가락질하고, 등을 돌려 버린다고 많은 이들은 생각한다.

«죽어야 산다 »는 이 역설의 진리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남을 것이라는 말로 감히 사람들을 흥분케 하고, 감히 사람들을 선동했던 저 예수를 « 죽이시오, 죽이시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오 »라고 핏대를 세우고, 침을 뱉고, 발로 찼던 사람들은 지금도 버젓이 살아 있다. 2천년 전, 예루살렘에 살았던, 예수를 살해하고 싶을 만큼 그를 증오하며, 예수를 두고, 손가락질하고, 바보라고 여기던 사람들은 지금도 버젓이 살아 있다. 예수의 삶을 지금 여기에서 재현해 살아가려는 이들을 향해 지금도 손가락질하고, 바보라고 비웃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손가락질하고, 바보라고 비웃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 그게 아니야. 그렇게 살면 안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참으로 그리운 어느 가을날의 아침이다.

이 세상 제대로 살려면, 똑똑해져야 하고, 빠릿빠릿하게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 차려야 하고, 때때로 내 이익이나, 나와 가까운 사람들, 가족이나 친척, 혹은 지인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기적으로 사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게 다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세상의 힘과 세상의 논리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못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어느 가을날의 아침이다.

그리움과 부끄러움이 교차하는 오늘 아침에 우리는 «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여러분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라는 말씀을 듣고 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어제 복음은 우리들에게 지금 여기의 삶 속에서 내 스스로 시간을 내어서 사람을 만나고, 내 스스로 시간을 내어서 주님을 찾고, 내 스스로 시간을 내어서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삶이 잘 사는 삶이라고 가르쳤다. 늘 바쁘다, 바쁘다 바빠 죽겠다고 하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바빠야 하는지도 모른 채 바쁜 삶,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가고, 돈 번다고 바빠 죽겠다고, 나중에 먼 훗날에 은퇴하고 나서 할 일 없을 때, 그때, 삶의 기쁨을 누려보겠다는 삶은 하나라도 더 움켜 쥐라고 하고, 하나라도 더 안 빼앗기라고 하지, 절대로 자기 소유를 다 버리도록 스스로를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런 삶은 지금 여기의 십자가를 짊어져 보라고 절대로 권유하지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결단을 차일피일 미룰 것인가? 오늘 복음은 나를 이렇게 쥐어 흔들면서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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