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2019 11 3일 연중 제31주일 미사 강론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모든 만남이 좋은 만남은 아니다. 모든 만남이 소중한 만남도 아니다. 원수들끼리의 만남은 증오와 그 증오로 말미암는 칼부림을 부르기도 한다. 준비 없는 우연적인 만남은 대개 어색함이나, 민망함, 혹은 당혹감을 동반하기도 한다.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만나기 위한 사람들 상호간의 바램이 있어야 하고, 준비도 있어야 한다.

             만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이다.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만남에 소통이 없으면, 서로의 마음 안에 담겨 있는 기쁨의 크기를 가늠해낼 줄 모르고, 슬픔의 깊이에 동화될 줄을 모르며, 고민의 두께를 과소평가한다. 그러면, 그 만남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갈피를 못 잡게 되고, 그 시간은 점차 무거워지게 된다. 사람 마음을 읽을 줄 모르는 것은 자기 말만 중요하고, 자기 마음만 중요하다고 여기고, 상대방의 말에, 상대방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남의 과정에서 자기 말을 줄이고,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는 노력을 서로가 보일 때, 그 만남은 다음 번의 만남을 반드시 기대하게 하고, 다음 번의 만남을 설레임 속에 기다리게 한다.

             만남이 지향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을 지향하는 만남은 그 자체로 상호간의 인격을 성숙시키는 자리이다. 사랑을 지향하는 만남이 되려면, 그 무엇보다도 정직해야 한다. 꾸며서는 안 된다. 초라한 진실이나, 잔인한 진실보다는 차라리 화려한 거짓말이 낫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진실된 만남은 자신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꾸밈 없는 첫만남에서부터 이루어진다. 진실된 만남은 그 자체로 치유력이 있고, 그 자체로 정화력이 있다. 진실은 진실을 알아보는 법이고, 사랑도 사랑을 알아보는 법이고, 상처가 상처를 알아보는 법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들에게 세관장 자캐오와 예수의 만남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만남은 구원을 이루는 만남이었다. 그 만남은 자캐오를 변화시키는 만남이었다.

             자캐오는 돈 많은 세관장이었다. 자기 민족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서는 로마제국에 바치고, 그 가운데 일부는 자기 몫으로 챙겼던 전형적인 매국노였다. 자캐오 스스로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별다른 윤리 의식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게 살았을 뿐이었다. 당시 모든 세관장들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예수에 대한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호기심이 발동했던 그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보려 했다. 비록 오늘 복음에는 이러한 말들이 없지만, 행간 사이에 감추어져 있는 “읽을 거리”는 우리들에게 자캐오라는 인물의 사람됨됨이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호기심은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를 직접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 싶다는 갈망을 자캐오 내면 속에 일으키게 했다. 그리고 그 갈망은 자캐오로 하여금 급기야 사람들을 앞질러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도록 했다. 복음은 이러한 자캐오의 심경을 단 세 문장으로 언급한다: “그는 예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드디어 예수와 자캐오가 만났다. 예수는 다짜고짜 자캐오의 집에 머무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주변의 사람들은 놀라며 투덜거렸다: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자캐오를 알고 지내던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가 자캐오를 죄인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당사자인 자캐오는 자신이 죄인인 줄을 몰랐다. 아니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죄인이라고 하는 말들에 단 한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자캐오를 예수가 변화시켰다. 자캐오는 예수를 보고,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시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스스로 깊이 뉘우쳤다. 그리고 예수께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라고 회개의 고백을 했다.

             도대체 예수가 어떻게 했길래, 벽창호였던 자캐오를 그렇게 변화시켰을까? 친구도 없고, 늘 혼자 섬으로만 살아왔던 자캐오의 지난한 세월을 “자캐오, 얼른 내려오시오. 오늘은 내가 당신 집에 머물러야 하겠습니다”라는 예수의 그 한마디 말이 자캐오를 변화시켰을까? 그토록이나 자캐오는 외로웠을까? 벼라별 생각이 다 든다. ‘벽창호를 단번에 녹여 내는 예수의 기술을 왜 복음사가는 적어놓지 않았나’ 속으로 말하면서 괜히 복음사가에게 눈을 흘기고 싶은 마음까지도 든다. 어쨌거나, 예수와 자캐오의 만남은 구원으로 이어졌다. 예수를 보고 싶어했던 자캐오의 호기심은 예수와의 만남을 이루었고, 그 만남은 자캐오의 회개를 일구어 냈고, 마침내 구원을 이루어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자캐오를 두고 시대가 낳은 죄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자캐오는 이 나라 이 땅을 왜놈들에게 다 빼앗겼을 때에,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하며 속으로 스스로 느끼는 치욕스러움과 사람들로부터 받는 갖은 욕들을 무마시키며 살았던 친일세력들을 저절로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다. 친일을 했던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일제 강점기동안 벌어 들였던 재산들을 모두 국고에 환원했던 극소수의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지금도 이 나라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거나, 자신들의 후손들에게 그 더러운 돈과 권력을 물려주기 위해서 갖은 탈법과 갖은 위법을 저지르고, 심지어는 헌법 재판소에 고소까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거리들을 버젓이 일삼기도 한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를 만나기 전, 변화하기 전의 자캐오에 해당하는, 우리 시대의 자캐오들을 떠올려 본다.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뻔뻔하게 살아가는 사람,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 과거에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그땐 다 그랬지’, ‘그땐 그럴 수 밖에 더 있었나’ 하면서 변명과 합리화를 늘어 놓는 사람, 한마디로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 한술 더 떠서 과거를 미화하고, 왜곡하려는 사람, 그래서 역사의식을 발톱의 때보다 더 못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 등등.

             가끔씩 TV나 신문에서 탈세나 탈루, 혹은 위법으로 쇠고랑을 차는 소위 높으신 분들의 집들을 보여줄 때가 있다. 참으로 민망스럽게도, 많은 경우, 그들의 집들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다. 십자가뿐만 아니라, 성모상이 있는 집들도 있다. 그런 집들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진짜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예수를 믿기보다는 예수를 등에 업고 세상의 권력과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세력에 빌붙어 보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오늘 복음은 무엇이든지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가진 사람들 가운데,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변화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의 도전으로 다가온다. 그 사람이 혹시 나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끔 한다. 참으로 불편하게 다가오는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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