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2019년 10월 23일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어떤 사람들은 특수사목 담당신부들이 별로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 상주 의무가 있어서 휴가기간을 제외하고는 늘 교구 내에 머물러야 하는 본당신부들처럼 일하지 않고, 이곳 저곳 떠돌이 생활(혹은 장똘뱅이 생활)을 하는 신부들이 특수사목 담당 신부들이까, 별로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산교구 내 특수사목 담당신부들의 90%가 모여 사는 가톨릭센터 사제관의 신부들은 대부분 다 바쁘다. 대개 특수사목 담당신부들은 고유한 자신의 임무 말고도 여러 직함을 갖는다. 나의 경우도 그렇다. 직함이 무려 7개나 된다.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이지만, 주교회의 이주사목 위원회 정회원 신부이고, 비정부 단체(NGO)지만, 부산 항만 공사와 해양수산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부산 선원 복지 위원회의 부의장이고, 부산 크리스찬 해양 연합 정회원이며, 부산교구 정의 평화 위원회 교육위원장이고, 사회교리학교 교장이며,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단 부산교구 대표이기도 하다. 이런 직함들 때문에, 내 삶도 좀 바쁜 편이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일복이 터져서 바쁜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바쁜 것도 아니다. 주교님은 나에게 해양사목 담당신부로 발령을 내셨을 뿐, 다른 일들까지도 맡아서 해야 한다고 명령하시지는 않으셨다. 이러 저러한 일들을 맡을 때에, 결국은 나의 동의를 반드시 구한다. 일방적인 명령은 아닌 것이다 이러 저러한 일을 맡아줬으면 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제안을 하고, 그 제안에 나는 « Yes »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일 많은 것도 결국은 내가 자처한 셈이다. 가끔씩 « No »라고 했다면, 이렇게까지 직함이 7개나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왜 이렇게 사나 ? 굳이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다 할 일들인데……’ 라고 볼멘소리 하면서도, 내일 일이 많을 테니, 일찍 자야겠다고 밤마다 나 자신을 다독거린다.
공동체나 수도원, 혹은 본당에서도 일이 좀 많은 분들이 계신다.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일복이 있는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지, 일복 없는 사람은 일을 그리 많이 안 한다. 봉사직을 맡고 있는 분들도 어쩌면 나와 똑 같은 생각들도 여러 차례 하셨을 것이다. 이런 생각 말이다 :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할 텐데, 이제는 좀 손을 놓고 쉬고 싶다. 그리고 또 내가 이 일을 안 맡아야 누군가에게 봉사할 기회를 주는 것인데,……’
어제 복음과 오늘 복음은 동일한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깨어 기다리고 준비하는 충실한 종에 대한 이야기다.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한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도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방식이 다를 뿐, 그들도 때가 되면 옷을 갈아 입고, 또 끊임 없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겨우살이 준비도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들뿐이다.
이 세상을 살아 가려면, 참으로 많은 일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많은 일들 가운데, 먹고 사는 일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특히나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은 더 그렇다. 사랑하는 일, 정의를 세우는 일, 평화를 위한 일은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신부 아무나 못 된다고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수도자 아무나 못 된다고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 아이고 당신은 신부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요. »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신부나 수도자나, 그보다 더 좋은 사람, 더 큰 사람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누구나 그 일을 하지는 않는다.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만이 한다. 완장차고 군림하는 것이 봉사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 나 자신이 열려 있는 사람만이, 그리고 힘들어도 그렇게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 가는 것이 참된 삶의 본질임을 온몸으로 깨닫는 사람만이 봉사직분 오래오래 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본당에서든, 특수 사목분야에서든, 수도 공동체에서든 봉사활동 좀 하자고 제 아무리 목에 핏줄이 설 정도로 떠들어 대어도, 결국은 일하는 사람만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일하기 싫어한다는 말은 아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봉사하고 싶어도, 시간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분명 있지만, 그저 한 주간 동안 미사 한 대 참석하는 것도 버거워하는 이들도 분명 있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시간과 자리에서 꿈쩍도 안 하려고 한다.
마음의 문이 아직 거기밖에 열리지 않은 것이고, 봉사라는 것이 « 사랑 »이라는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임을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고, «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는 주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삶으로 살아내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봉사의 직무라는 것이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주어져 있는 몫이 아니다. 봉사의 직무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하늘로부터 많은 것을 받은 내가 다시금 내어 드리기 위한 방식이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너무 볼멘 소리하지 말라면서 빙긋이 웃어주시는 주님을 만나게 한다. « 나도 힘들다. 그래도 안드레아, 우리 같이 해보자 »라고 내 어깨를 토닥거려 주시는 주님을 만나게 한다. 나에게 오늘 복음은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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