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2019년 9월 17일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해양대학교 2학기 개강 미사 강론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2019년 여름 방학 잘 보내셨는가 ? 그리고 지난 추석 연휴도 잘 보내셨는가 ? 아직 낮의 열기는 지난 7,8월의 더위에 버금가지만,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을 보면, 가을이 성큼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한 과부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에게 손을 내미신다. 그녀의 마음을 읽어 내고, 그녀의 행동을 정성껏 바라보며, 그녀의 슬픔에 공감하고, 마침내 그녀를 구해내는 예수의 행동들은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오늘 복음은 마치 새로운 2학기를 시작하는 우리들에게 이번 한 학기동안 우리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로 다가오는 듯 하다. 바로 사랑의 실천이다.
신앙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을 마치 윤리 생활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에 기대는 것보다는 모든 인간은 죄인임을 더 많이 강조하는 이들이 있다. 하느님의 뜻은 율법과 계명뿐이라고 여기고, 그 율법과 계명만 철저히 지키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주일미사 잘 나오고, 레지오나 각종 신심단체에 최소한 한 두개 정도 가입을 해서 활동하는 것이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외적인 것들에 충실한 것은 적어도 내적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우리들의 심리를 만족시켜 주는 것 같다. 그런데, 적지 않은 경우, 본당에서, 각종 신심단체들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들이 들린다. 예수 따라 살아보겠다고 마리아 따라 살아보겠다고 모인 단체들에서 예수 소리, 마리아 소리는 뒷전이다. 누가 더 열심이라느니, 누가 덜 열심이라느니, 이렇게 살아야 열심한 신앙인이라느니, 저렇게 살아야 열심한 신앙인이라느니, 이래라, 저래라, 이러지마라, 저러지 마라 식의 도토리 키재는 소리들이 요란하다.
겉으로는 예수 믿는 것으로 보이는데, 실상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에게서 뭐 좀 얻어 낼게 없나, 예수 믿으면, 내 삶이 좀 편해지고, 내 마음이 좀 편안해지려나, 예수 믿느려고 온 사람들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좀 더 착한 사람들도 만나고, 그래서 더불어 사는 재미도 좀 느껴 보고, 그러면서 내 자랑도 좀 하고, 못난 이들에게는 잘 해라고 한소리도 하면서 정의를 실천하는 양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는지, 이런 것들을 얻으려고 성당 다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도토리 키재는 소리들을 들으며 내 뇌리 속에서 새록새록 일어난다.
복음은 지금으로부터 2천 여년 전 예수 시대에나 통용되는 언어가 아니라, 지금 이순간에도 통용되고, 미래에도 통용될 언어이다. 그리고 그 복음의 핵심은 사랑의 실천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으로 대하려고 할 때, 가장 힘든 것이 있다면, 무력감이 아닐까 싶다. 대개 사랑으로 대하려는 그 사람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크면 클수록, 무력감도 크게 다가 온다.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최소한의 예의 범절이라도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지내면 지낼수록 영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무력감의 한 모습이다. 아무리, 무슨 말을 하더라도, 뉘 집 개가 짖는 것만도 못하게 만드는 것, 처음에는 화도 나고, 무시 당했다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지다가, 나중에는 그 사랑을 거두어 들이려는 마음, 죽 쒀서 개 줬다고 느껴지는 마음, 아마도 살아 가면서, 가정에서, 남편에게서, 아내에게서, 부모들에게서, 자녀들에게서, 혹은 직장에서, 혹은 나랏일 하시는 분들에게서 이런 마음 느껴 보신 적이 적어도 한 두 번은 있을 것 같다.
흔히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미움은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그래도 어느 정도라도 남아 있을 때에 그 상대방에 대해 갖는 마음의 한 모습이다. 그러나 무관심은 다르다. 상대방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없는 것, 어떠한 관심도 없는 것, 그래서 그 상대방이 죽든지, 말든지, 나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것, 그 상대방을 쓰레기로 여기고, 쓰레기통에 버려 버리는 것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누가 오든,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작정한 사람들, 귀 닫고, 눈 막아 버리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 복음은 참으로 무력하다. 돌처럼,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제 아무리 세상 최고의 석공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 돌같이 굳은 마음을 쪼개어 내고, 그 마음을 아름다운 조각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제 아무리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용광로를 가지고 있는 이들도, 그들의 얼어 붙은 마음을 녹여 내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충고가 뉘 집 개 짖는 소리가 되어 버린다면, 그건 누구 탓일까? 충고하는 그 사람 탓일까? 아니면, 그 진심을 몰라 주는 사람 탓일까? 제 아무리 따뜻한 말로, 따스한 행동으로, 따스한 햇볕으로 얼어 붙은 마음을 열려고 해도,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고, 귀를 열지 않고, 눈을 열지 않는 사람 있다. 2천년 전, 예수의 말씀과 예수의 삶에 눈 닫고, 귀 막아 버린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있다. 교회 안팎에 수두룩하게 있다. 예수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람들 속에도 있고, 그 부류에는 혹시 나도 끼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사랑이라는 것, 무엇일까? 사랑은 반응이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마음을 읽어 내려는 노력이다. 상대방의 행동을 정성껏 바라보는 일이다. 이 놈이 무슨 말을 하나, 이 놈이 무슨 행동을 하나 하면서 감찰하는 것은 상대방을 자기 수하에 두려는 짓거리이지, 사랑은 아니다. 감시하고, 관찰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전자에는 그 사람 입장에 서 보는 일, 역지사지하는 일이 없지만, 후자에는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사람 됨됨이와 그 사람의 정서적, 정신적 배경에서 보려고 하는 노력, 그 사람의 입장에 함께 동참하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쩌면, 사랑하면서 산다는 것은 ‘입장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 들이고, 함께 공감해 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의 반복이 아닐까?
사랑만 이런 것이 아니라, 신앙도 마찬가지다. 기도하고, 미사 참례하고, 성체를 영하면서, 신앙인은 예수의 사랑과 예수의 마음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그 기억과 기념을 바탕으로 예수의 마음을 내 마음과 일치시켜, 이 세상에서 또 하나의 예수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바로 신앙인이다. 기도하는 사람도 늘고, 성당에 와서 성체 영하는 사람들도 늘지만, 정작 교회는 힘이 빠져 가고 있고, 신앙도 무력해진다면, 그것은 교회의 구성원인 신앙인들이 예수처럼 세상을 살아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처럼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남의 삶에 감 놔라 대추 놔라 식의 참견이 아니라, 남의 삶에 관심을 갖고, 그의 삶의 형태나 방식을 지켜보며, 그에게 참으로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는 것,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런 사랑을 가르치며 살포시 다가오고 있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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