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 한인성당 안내
2017.01.04 21:23

사이판 소개

조회 수 443 추천 수 0 댓글 0
Atachment
첨부 '1'

(1) 사이판(북 마리아나 아일랜드) 역사와 문화

화산폭발로 이뤼진 북마리아나제도의 역사는 크게 선사시대, 스페인 통치시대(1521~1899), 독일 통치시대(1866~1914), 일본 통치시대(1914~1944), 미국 자치연방시대(1945~현재)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기원전 1,500년 경, 동남아 말레이반도에 살던 어부들이 카누를 타고 바다로 건너와 농업과 어업으로 생활을 영위한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차모로(Charmoro) 원주민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들은 수직의 돌기둥 위에 버섯 모양의 돌을 얹어 만든 라테스톤(Latter Stone)을 이용하여 집을 지어 살며 엄격한 모계사회의 전통을 이어 갔다.

이러한 마리아나 제도에 전혀 다른 대륙의 외지인으로서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은 1521년에 찾아온 스페인의 탐험가 마젤란이었다. 마리아나라는 명칭은 최초의 스페인 식민지가 괌에 설립된 시기인 1668년에 붙여진 이름으로, 스페인 군대는 그들의 통치 방식에 저항하는 차모로 원주민을 학살하는 한편 다른 섬으로 추방했는데 이때 많은 차모로 원주민들이 남쪽의 괌으로 추방당했다. 스페인 식민통치 정부는 1800년대에 사이판과는 거리가 있는 트럭(Truk)이라는 섬에 살던 또다른 원주민인 캐롤리니안(Carolinians)을 사이판으로 이주시키면서 목축과 농사에 종사하게 하였다.

이후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주변 섬으로 추방된 차모로 원주민들에 대한 사이판 재 이주가 허용될 때까지 오리지날 원주민 차모로에게 북마리아나제도는 잃어 버린 고향과 같았다. 이후 1898년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괌과 필리핀을 점령하게 되고 1899년 독일은 스페인으로부터 사이판을 사들이게 된다. 이 시기는 스페인 통치와는 달리 매우 평화롭고 생활의 질도 크게 향성되는 시기였는데, 1914년 독일로부터 사이판을 비롯한 마리아나제도의 일부 섬들을 빼앗은 일본은 이지역에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한편 군사적 요충지로 개발, 이로써 사이판을 비롯한 북마리아나제도는 태평양 전쟁의 한복판에 있게 된다.

이후 2차 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미 해군 정부가 정부가 이양을 받아 1962년까지 통치하게 됨으로써 마리아나제도는 또다른 변화를 겪는다. 그후 25년간 북마리아나제도는 마이크로네시아의 다른 지역과 더불어 유엔의 조치에 따라 미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는데 1976년 미국과 북마리아나제도 간에 북마리아나제도 연방 설립에 관한 협약이 이루어지고 1986년에는 유엔의 신탁통치가 종결됨으로써 북마리아나 제도연방(CNMI : Commonwealth of the Northern Mariana Islands) 주민들은 완전한 미국 시민권을 갖게 되었다(외교, 국방권은 미국 관할이지만 나머지는 자치령). 이후 현재까지 미국 자치령으로 주지사와 상.하의원을 선출하며 그 법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2) 문화 및 언어

전통 차모로 양식과 스페인 지배 시절의 카톨릭 영향, 그리고 미국식의 생활양식이 혼재하고 있다.

고대부터 모계사회였던 이유로 신랑은 결혼 지참금으로 집과 가정용품을 준비했고, 결혼 후에는 모든 것이 신부의 소유가 된다. 현재도 이러한 모계사회의 풍습이 일부분 남아있기도 한다. 전통 차모로 문화의 영향은 축제와 음악, 구전 민요, 전통 공예, 요리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용어는 영어이나, 현지어로 원주민(차모로, 캐롤리니언)이 사용하는 차모로어와 캐롤리니언어이며, 최근에는 많은 관광객들의 영향으로 일본어, 한국어를 하는 원주민도 더러 있다.

 

(3) 기후

연중 기온차가 1~2도 정도로 거의 변화가 없다. 하루 평균 온도는 섭씨 27도, 습도는 70% 이상으로 높은 편이지만 불쾌지수는 무역풍 영향으로 높지 않다.

계절은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데, 대략 7월과 9월 사이는 우기로 열대성 폭우인 스콜이 자주 온다.

 

marina.gif

출처 : 사이판 한인성당 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