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원고

나의 투 병 체 험 기

                                                                         문 정호 요한 비안네
 

70세 넘게 살아오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건강 하나 만큼은 자신하며 살아왔는데 2016년 초부터 걷기가 불편하고 오르막을 오르면 숨이 차고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이 왔다. 3월이 되어서는 그 증세가 아주 심각해져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악성 빈혈이라는 병명이 나왔고 빈혈의 원인을 찾는 여러 검사를 하다 십이지장에서 피가 새고 그 부위의 조직검사 결과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수많은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나에겐 있기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암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들어도 별로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그 길로 성전을 찾아 감실 앞에서 예수님, 제가 암에 걸렸다고 하네요. 죽고 사는 것이 예수님 뜻이니 알아서 해주셔요.” 하고 말씀드리니 마음이 무척 편했다. 그리고 아내와 몇 분에게만 이 사실을 알리고 아무 치료도 하지 않고 전과 같이 기쁘고 즐겁게 살면서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1년을 행복하게 살았는데 2017년 초부터 먹으면 토하고 복통이 심해서 다시 병원을 찾았고 여러 검사 결과 십이지장암이 번성해져 4기 가까이 되었고 이 정도면 주위 장기에 전이될 가능성이 높은데 어떤 장기에도 전이가 되지 않은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이라고 믿었다.

 

먹을 수가 없으니 할 수 없이 2017년 부활대축일 다음날 부산대 양산 병원에서 위 아랫부분, 담도와 쓸개, 췌장 절반과 십이지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9시간에 걸쳐 받았고 지금까지 요양 중에 있다. 지난 2년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나에겐 고통이 아니라 참회의 시간이었고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길을 열어준 은총의 사간이었다. 그래서 한번도 주님, 제가 뭘 잘 못해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하고 주님을 원망해본적도 없다. 그리고 많은 체험을 했고 그 중에 몇 가지를 나눌까 한다.

 

먼저 수술 날짜가 잡혀서 주위 모든 분들께 나의 병을 알렸다. 그 후에 평일미사에 가면 나의 가족도 모르는 분들과 저의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단원들이 계속 미사봉헌을 해주시고, 성령기도회 회원들께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해주시고 또한 주임 신부님께서 용기를 내고 두려워하지 마셔요. 수술 잘되고 빨리 회복시켜주시라고 교우 분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는 격려의 문자를 여러 번 받았다. 빈혈에는 포도가 좋다고 포도를 끊이지 않고 사다주시는 형제가 있었고 영양 보충하라고 영양식을 가져다주신 분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아무 것도 한 것 없는 나를 위해 이렇게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나는 너무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죄인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픈 교우를 위해 미사 봉헌해드린 적 한 번도 없고, 기도회에서 중재기도 신청하신 분들을 위해 그저 건성으로 기도해드렸을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나 나름대로 참된 신앙인인양 자부하며 살아온 내 삶이 너무나 교만하고 이기적이었다는 죄책감과 함께 깊이 반성하고 회개하게 한 시간이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참 행복했다. 주님을 모시는 형제자매가 가족보다 더 뜨거운 사랑으로 병자인 나를 위로해주시고 기도해주시니 내가 천주교인이 된 것이 너무나 기쁘고 자랑스러웠고 만약 내가 하느님을 모르고 살았다면 이와 같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홀로 아파하다 죽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나와 같이 천주교인이 된 우리 모두는 축복받은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나를 위해 기도와 물질적 도움을 주신 분 들게 이 글을 통해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수술대 위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아무리 침착하려해도 이런 큰 수술은 처음이라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밀려올라왔다. 우리 주님께서 모든 것 잘 되게 해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어도 나 역시 나약한 인간이다 보니 혹시라도 잘못되어 다시 깨어나지 못하면 어찌될까하는 두려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 전신 마취주사제를 투입합니다.”하는 소리에 주님, 저를 맡기오니 꼭 깨어나게 해주십시오.”하고 기도 하자 내 오른 쪽에 성모님이 서계신 것을 보았고 아들아, 네 아버지가 널 지켜주시고 내가 네 옆에 있으니 아무 염려 말아라.”라고 하신 음성을 듣고 의식을 잃었다가 9시간 후에 깨어났다.

 

이 체험을 통해 나는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우리는 토마스가 주님을 뵙지 않고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안 믿으러한 것처럼 눈으로 보지 못한 주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님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면서 우리가 잘 되만을 바란다는 것을 이 수술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수술 후 입맛이 없어 식사를 못해 체중이 20kg 가까이 빠지고 수술부위의 통증이 너무나 심해 괴로울 때도 있었다. 하도 괴로워 하느님, 이렇게 고통스럽게 오래 살기 싫으니 지금 나를 데려가 주십시오.”하고 소리를 질렸더니 그 소리를 듣고 아내가 놀라 당신이 죽으면 안돼요. 성냥개비처럼 말라도 죽지 말고 나랑 10년은 더 살아야 해요. 당신은 나에게 생명같이 소중한 사람입니다.”하고 나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생명같이 소중한 사람, 말라 비틀어져도 죽지 말고 살아야할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착한 남편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내가 아내의 생명같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그 말에 가슴이 뭉클하며 눈물이 팍 쏟아졌고 어떻게 해서라도 10년은 더 살아야겠다고 맘속에 다짐을 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이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지 잘 모르고 살아간다. 한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난 빈자리가 있을 때 그 자리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알게 된다. 우리 모두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소중한 아내, 소중한 남편 , 소중한 자식, 소중한 이웃, 소중한 신부님이고 소중한 수녀님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아끼고 감싸주며 살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프고 나서 감실 앞에서 주님과 대화하기를 참 좋아한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사정들을 예수님께 고백하고 나면 날아갈 듯이 기쁘고 들려주시는 말씀은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잊게 해주시니 이보다 더 낳은 약이 있을까? 수술 후 3개월이 지나 성체조배하면서 예수님, 수술 잘되고 빨리 회복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예전 같지 못하니 속히 전처럼 건강하게 해주셔요.”하고 청했더니 사랑하는 아들아, 너를 만드는데 10개월이 걸렸지만 째고 자르고 꿰맨 네 장기를 고치는 것은 너를 만들 때보다 더 어렵고 힘이 든다. 깨끗하게 낫게 해줄 테니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라.”고 말씀해주셨다. 깨끗하게 낫게 해주신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의사가 있을까?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운 이기주의자인가를 또 깨닫게 되었다. 남들보다 더 빨리 더 깨끗하게 회복시켜주셨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오직 내 욕심만을 채우려고 예수님께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으니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 죄를 짓는 기분이 되었다. 새로 만든 것보다 더 어렵게 회복시켜주고 계시는데 참지를 못하고 욕심을 부리고 있는 내가 한 없이 부끄러워 용서해주시라고 빌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시련과 고난을 겪으며 산다. 나 같은 질병문제, 가족문제, 경제문제나 사업문제 등에서 오는 시련과 고난을 겪으며 산다. 그때마다 그런 시련과 고난을 빨리 없게 해주시라고 주님께 기도한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다 아시고 계시지만 때가 되어야만 그 기도를 들어 주시는데, 그때 까지를 참지 못하고 주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주님 곁을 떠나는 분들도 있다. 지금 당장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주님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나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때가 되면 우리의 기도를 꼭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모두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한다. 암이라고 하는 병에 걸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누구도 자기는 암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 할 수도 없다. 때문에 누구라도 걸릴 수 있다. 걸릴지라도 두려워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침착하게 치료방법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공포에 휩싸여 쩔쩔매는 그 순간부터 암의 세력은 더욱 왕성하게 육신을 망가트리고 끝내는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다.

 

나는 항암치료와 다른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거절하고 평상시의 식생활을 하며 어떤 치료도 별도로 받지 않고 있다. 대신에 성지순례, 피정, 매일미사 등 주로 영성생활을 통해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자연치유를 하고 있다. 주위에서 병원치료를 하지 않는다고 걱정해주시지만 나는 별로 그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하는 부자에게 하느님께서는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루카 12,19-20)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좋은 약과 치료기술로 생명을 연장하려고 애를 써도 주님께서 불러 가시겠다고 하면 오늘 밤에도 데려가실 것이고 세상에 남아 하느님의 일을 더 해야 하는 당신의 도구로 쓰시려고 하시면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아픈 이들을 낫게 하시고 심지어 죽은 이를 살리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나는 믿는다. 그래서 매일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분이 원하시는 작은 일이라도 하면서 그분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하루하루를 산 것이 2년을 살게 해주셨으니 앞으로도 나를 당신 도구로 써야겠다 싶으면 1년이고 2년이고 더 살게 해주시리라 믿고 지금처럼 매일을 살 것이다.

 

열두 해 동안 하혈하는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낫게 될 것이라는 믿음에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8,48)고 하셨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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