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오혜민 기자의 취재기 / 로마로 가는 길

발행일 : 2009-02-08

차창 밖으로 이탈리아가 들어온다

사도가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이탈리아 시라쿠사에 상륙해

사흘을 머물렀다가 푸테올리에 닿은 것처럼

나도 비행기를 마다하고 그렇게 이탈리아로 간다

나에게는 반갑지만

사도에게는 반갑지만은 않았을 육지다

언제 생을 마칠지 모를 상황에서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따르르르르릉.”

호텔 프론트의 모닝콜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침대 끝에 앉은 시각은 새벽 3시. 눈을 감은 채로 손을 더듬어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항구는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지만 서둘러야 배 시간을 맞출 수 있다.

로마로 간다. 바오로 사도가 3개월간 머물렀던 몰타를 떠나 로마로 향한다.

비행기를 이용하면 한 시간 걸릴 거리를 일부러 배와 야간열차, 그리고 버스를 택했다. 사도가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이탈리아 시라쿠사에 상륙해 사흘을 머물렀다가 푸테올리(Pozzuoli)에 닿은 것처럼, 나 또한 비행기를 마다하고 그렇게 이탈리아로 간다.

몰타 항구에는 이탈리아 카타니아행 배가 정박해있다. 규모가 상당한 페리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는 승객들의 얼굴이 어슴푸레하게 비쳤다. 자리를 잡고 그대로 잠이 든다. 사방은 깜깜한 바다일 뿐이고 전날 밀카와 늦은 만남이 피로를 가중시켰다.

세 시간이 흘렀나보다. 잠시 후 이탈리아 카타니아 항구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흐르자 승객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슬며시 눈을 뜬다. 해가 말갛게 떴다. 아침이 온 것이다.

나는 바람이 부는 갑판으로 나갔다. 육지가 보인다. 이탈리아다. 사도가 배에서 바라본 육지의 모습도 이러했을까. 나에게는 반갑지만 사도에게는 반갑지만은 않았을 육지다. 언제 생을 마칠지 모를 상황에서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앞으로 지루하게 이어질 로마까지의 순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나는 로마까지 무사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사도에게 도움을 청했다.

빠른 걸음으로 배에서 내려 버스 터미널을 찾았다. 시라쿠사로 향할 버스다. 차창 밖으로 이탈리아 남부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간다. 시라쿠사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지루한 오후 나절을 꼬박 기다린 나는 다시 로마 테르미니로 향할 야간열차를 탔다.

작은 방 안, 작은 침대에 여권이 든 가방 하나를 던져놓고 피로한 몸을 누인다. 짐을 잃어버린 탓에 오히려 몸이 가볍다. ‘잃어버린 가방 때문에 피가 마르지만 전화위복이 된 셈’이라 생각하니 이제야 웃음이 나왔다.

덜컹덜컹. 열차가 움직였다. 지금부터 꼬박 아홉 시간을 이 작은 방 안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차창 밖으로 움직이는 이탈리아의 풍경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치안이 좋지 않다는 이탈리아 야간열차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밤을 꼬박 샐까 생각도 했던 나는 이내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

위험을 무릅썼던 사도. 시련에 맞섰던 사도. 이제 나는 사도의 길을 따라 로마로 향하고 있다. 열차는 달리고 또 달렸다. 야간열차 밖의 밤이 깊어질수록 잠도 깊어지고 있었다. 바오로 사도의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사진설명

▲시라쿠사 역에 도착했다. 로마로 가는 야간열차를 이곳에서 탄다.

▲9시간의 야간열차 여행. 로마로 향하는 열차의 흔들리는 창 밖.

▲몰타를 떠나 도착한 이탈리아 남부 카타니아 항구의 아침.

 

 -자료출처: 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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