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오로의 마지막 여정] (2) 오혜민 기자의 취재기- 몰타에 도착하다

발행일 : 2009-01-04
오혜민 기자

(2)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렸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단지, 항상, 늘 예수 그리스도에

모든 시선이 고정돼 있던 분입니다.”

가방을 잃어버렸다.

그리스에서 몰타로 부친 가방은 항공사의 실수로 행방불명이 됐고 나는 여권과 카메라, 취재수첩만을 달랑 든 채 분실물 신고센터로 향했다. 남자 기자들처럼 담배를 꺼내 물 재간도 없는 나는 몰타공항을 나와 망연자실 하늘만 바라봤다.

가방을 잃어버리니 아름다운 몰타 절경도 나오느니 한숨이다. 옷가지, 세면도구는 물론 중요한 자료 대부분이 그 가방에 있다. 여대생으로 보이는 학생 하나가 이곳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위로해줬다. 시내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고 그대로 뻗어버렸다.

몇 시간을 잤을까. 간신히 일어나 저녁을 해결하고 골목을 배회한다. 짐을 잃어버렸으니 세면도구부터 사야하는데 도착한 날이 마침 일요일이라 상점이 전부 문을 닫았다. ‘칫솔’ 하나를 구하기 위해 골목 구석구석을 걷는다. 상점을 눈이 빠져라 찾으며 걷고 또 걷다보니 ‘바오로의 나라’ 몰타가 어깨를 두드리며 문득 말을 걸어온다.

평화스러운 풍경. 만지면 바스라질 것만 같은 노후한 건물들이 즐비한 고대도시. 집집마다 붙은 바오로의 상본들은 ‘이곳이 어떻게 사도를 기억하고 있는가’에 대해 친절히 대답한다.

곳곳에 숨어있는 성당 또한 마찬가지다. 사도 바오로 성당이 여러 곳 있음은 물론 ‘사도 바오로 난파 기념성당’(Saint Paul’s Shipwrecked Church), ‘사도 바오로의 본당성당’(St. Paul’s Parish Church)처럼 몰타에서의 행적을 기억하는 곳까지 있다.

다운타운을 두 시간쯤 돌아 겨우 칫솔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성당 종소리가 울린다. 사도 바오로 난파 기념성당 철문이 빠끔히 열려있다. 아침만 해도 굳게 닫혀있던 성당이다. 주일미사가 시작된 것이다.

몰타어로 봉헌되는 미사. 그 가운데 나는 서 있다. 기도를 한다. 개인적으로 많은 지향들이 있었지만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부터 끄기로 했다. 가방을 찾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다.

제대 위 천장에는 사도가 말에서 떨어지는 다마스쿠스 회심장면이 그려져 있다. 제대 왼쪽과 오른쪽에는 몰타에서 풍랑을 맞고도 전도를 계속하는 사도가 있고, 유대인회당에서 전도하며 천사를 만나는 바오로 등 사도의 그림들이 성당 전체에 펼쳐져있다.

1600년경 설립됐다고 하니 약 400여년쯤 흐른 셈이다. 빈센트 불치 주임신부와 사무장이 바오로 해를 맞아 한국에서 기자가 왔다는 말에 흔쾌히 이곳저곳을 보여준다. 그는 바오로 사도는 어떤 성인이었냐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단지, 항상, 늘 예수 그리스도에 모든 시선이 고정돼 있던 분입니다.”

사도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몰타 땅에 떨어져 거룩한 누룩이 됐다. 골목 이곳저곳에 바오로의 해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고 사도를 기리는 곳곳은 유럽 사람들의 순례지가 됐다.

‘달릴 길을 다 달렸다’는 사도의 말은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됐다는 이야기다. 죽음을 위해 로마로 향하던 그 길, 사도는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서 석 달 동안 선교를 계속했을까.

몰타의 첫 번째 밤이 깊어간다. 호텔에 돌아와 가방의 행방을 찾기 위해 한 시간 간격으로 공항에 전화를 돌렸다. 며칠 후면 이곳을 떠나 로마로 향해야 하는데 가방을 찾더라도 몰타로 가방이 오게 되면 가방을 또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의 두려움과 복음의 희망이 교차했을 사도처럼 나 또한 가방으로 인해 이곳, 몰타에서 피가 마르고 있다. 그리고 사도의 사명감처럼 나는 취재를 계속해야 한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시작된 이번 취재, 여행, 그리고 순례. 바오로 사도는 첫날부터 나를 이렇게 이끌었다. 몰타의 바람이 분다.

사진설명

▲비행기에서 바라본 몰타.

▲사도 바오로 난파 기념성당.

▲사도 바오로 난파 기념성당의 천장화.

▲고대도시 몰타의 골목길.

 

 

 -자료출처: 가톨릭신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 사도회 성지순레 file 용두산 2019.06.03 17
16 복자 정찬문 묘소에서 file 등대지기 2019.04.30 8
15 잔주수목원 나들이(복자정찬문 묘소 순례후) file 등대지기 2019.04.30 9
14 복자 정찬문묘소 순례 file 등대지기 2019.04.29 4
13 (12)·끝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사도를 또 만나다 등대지기 2019.04.29 10
12 (11) 사도를 보내며, 트레 폰타네 등대지기 2019.04.29 19
11 10. 마메르티노 감옥과 파울루스 잡지를 만나다 등대지기 2019.04.29 9
10 (9) 하느님의 말씀은 묶이지 않았다, 성 바오로 알라 레굴라 등대지기 2019.04.29 7
9 8. 비아 아피아 안티카, 로마에 도착하다 등대지기 2019.04.29 10
8 오혜민 기자의 취재기 / 푸테올리로, 그리고 로마로 등대지기 2019.04.29 15
7 6. / 오혜민 기자의 취재기 / 로마로 가는 길 등대지기 2019.04.29 4
6 (5) 오혜민 기자의 취재기 - 몰타여, 안녕! 등대지기 2019.04.29 7
5 (4) 오혜민 기자의 취재기 - 몰타의 초대주교 푸블리우스를 만나다 등대지기 2019.04.29 9
4 (3) 몰타, 바오로 섬 등대지기 2019.04.26 32
» (2)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렸습니다 등대지기 2019.04.26 55
2 [사도바오로의 마지막 여정] (1)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렸습니다 등대지기 2019.04.26 79
1 2019년도 사도회 봉사자 등대지기 2019.04.25 13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