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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의 아침 -신 귀거래사 / 정경수
 

 

고향하면 그리움이 다가온다. 정지용의 ‘향수’를 부르면 고향 마을이 떠오르고 추억의 먼 과거로 달려간다. 이은상의 ‘가고파’를 부르면 고향 남해로 가던 뱃전에 기대어 갈라지는 청무웃빛 물살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던 까까머리 한 소년이 떠오른다. 만 10년을 살고 부산으로 떠나온 곳이지만 가슴에 새겨져 있는 그 수많은 날들의 추억 하나하나는 그대로 고스란히 나의 삶을 키워왔는가 보다. 얼마 전 시집을 내면서『그리움은 어머니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어린 시절 그리운 어머니의 모정이 담긴 고향을 잊을 수가 없어서 단 제목이다.


봄이 가는 게 아쉬워 내리는 비일까, 여름이 오기를 재촉하는 비일까. 어제 오후부터 밤새 비가 내리더니 새벽 창가에 서니, 앞산 문래봉과 매암산이 운무에 싸여 보이지 않는다. 비가 이렇게 주룩주룩 내리는 날은 우산을 바쳐 들고 한없이 걷고 싶다. 어린 시절 비가 오면 항상 정신없었던 물놀이가 나의 숨은 동심을 발동시킨다.

이른 새벽 우산을 펼치고 나섰다. 서늘한 새벽 기운이 쇄락하다. 좌광천으로 내려서니 불어난 물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잔디는 촉촉이 빗물을 머금었다. 산책길가 노랗게 익은 보리는 비를 맞아 고개를 한껏 숙이고, 언덕바지엔 금계국 노란 꽃이 만개하여 천변이 환하다. 겨우내 쌓여 냇바닥과 물풀을 덮고 있던 흙먼지가 급히 흐르는 물살에 씻기고 나면, 내일 맑은 물에 또 은어의 유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수양버들은 비에 젖어 땅을 끌듯이 늘어지고, 왜가리들은 물가에서 유유히 모이를 쪼고 있다.

갑자기 한 마리 청둥오리가 날아와서 바로 내 앞 수초 옆에 앉는다. 나를 발견하지 못해서일까, 우산을 바쳐 든 체 숨을 죽이고 꼼짝을 않고 살핀다. 풀 주변을 돌다가 갑자기 머리를 물에 몇 차례 들이밀더니 날개를 활짝 펴고 날갯짓을 한다. 뒤이어 훌쩍 잔디밭으로 뛰어 오르더니 고인 물에 부리를 쪼아댄다. 부지런히 깃을 고르다가 또 한바탕 날개를 휘젓는다.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새의 모습이 신기하여 나는 계속 앵글을 대고 정신이 반은 나갔다. ‘왜 새는 나를 두려워할까? 가까이 서로 정답게 대화라도 나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코앞에서 재롱을 부리듯이 자유로운 오리의 모습에 갑자기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문득 새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는 너를 해치지 않을 터인데 너는 나를 믿지 못하는구나.’

이번에는 지천支川의 작은 다리 아래에서 해오라기 한 마리를 발견했다. 머리 뒤의 흰 깃을 흔들면서 그 가녀린 다리로 특유의 걸음을 걷는다. 3미터도 안 되는 바로 위에서 내가 지켜본다는 것을 모르고, 주둥이를 몇 번 주억거리며 모이를 찾더니 갑자기 다리 밑을 지나 저편으로 날아간다.


고향을 그리다가 이제 도심에서 가까운 정관신도시를 찾아 4년 반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황량하기만 하던 이곳이 이제 정이 들고 있다. 자연이 바로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사철 변환하는 주변의 경관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노랫말에 ‘정들면 고향이라’ 하지 않았던가. 말없이 나를 반겨주는 이런 자연이 있어 나는 새로운 귀거래사를 써야 할까보다.

바쁘게
살아갈 때는
산에 가도
산이 아니고

바다에 가도
저만치
하나의
사물일 뿐

모든 일
다 뒤로 미루니
산도
바다도
보였다. (
<정년퇴임> 후 전문. 졸시) 2013.6.8. 부산일보 토요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