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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부산가톨릭문예공모전 입상작 / 최우수 / 시조


 

시월

김임순┃안젤라(토현성당)
 

하루해 꼭지 따면 물살처럼 급히 돌아

한 눈 팔 새 없이 거두고 비워낸다

들판은

자글거리며

지친 몸을 말린다.

 

 

 

짙어진 그늘마다 바람 끝 감아 돌고

하늘이 아우르던 느티나무 붉은 물빛

떨어져

누운 그리움

아득한 봄날 저편

 

 

 

사는 일, 허덕이며 돌부리 채이는 일

눈 맞춰 가을 얘기 꺼내지도 못했는데

청마루

잠시 걸터앉았다

일어서는 시월 손님.

 

 

 

■ 2012년 제24회 부산가톨릭문예공모전 입상작 / 우수 / 시

 

 

 

장마

한형석┃유스티노(주례성당)

여름철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 들었다.

 

 

 

열흘이 지나도록 선풍기로부터 밀려오는 음습한 파도가 빨래처럼 방안에 널려 있었다. 바닥으로 고꾸라진 파도는 신문지를 일으켜 세우려했지만 번번이 주저앉고 말았다 사방으로 흩어진 신문지의 검은 활자들이 벽을 기어올라 곰팡이의 검푸른 말을 받아 적었다. 구석에 틀어박힌 걸레 밑에선 아직 문장을 이루지 못한 곰팡이의 말들이 망아지처럼 날뛰었다. 방안에 눌어붙은 적막이 읽어 내리는 벽의 문장은 빗소리에 씻겨 수챗구멍을 메웠다. 열흘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중얼거림이 방 안의 모든 감각을 가물게 했다. 내내

 

 

 

내 안의 축축하게 메말라 가는 방을 내가 들여다보고 있었다.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인용.

■ 2012년 제24회 부산가톨릭문예공모전 입상작 / 우수 / 신앙체험

 

 

 

음악 속에서 만난 하느님- 영원히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리라

김지영┃끌로틸다(좌동성당)

매일 나는 천국을 만난다. 내가 만나는 천국은 음악 속에 있다. 평화롭고 즐겁고 유쾌하고 따뜻한 그 세계 속에서 나는 천국을 맛본다. 하느님께서 내게 살아가는 동안 천국을 매일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주님 계신 천국의 삶이 얼마나 행복할지 늘 기대하고 있다.

 

 

 

어린 시절, 나는 몸이 약하고 자주 아팠다. 감기 같은 잔병치레로 학교에 결석이 잦았고, 그러다 보니 밖에서 뛰어놀기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자연이 많았다. 집에 있을 때는 아버지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동화책을 읽고 시간을 보냈다. 몸이 약하니 집중력도 약해서 한 가지를 오래 못하고 싫증을 잘 내는 편이었고, 특별히 공부를 열심히 노력해서 한 기억도 없다. 다만, 초등학교 1학년 때 교실의 풍금을 쳐보고 싶어서 부모님을 졸라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게 된 일이 내가 기억하는 한, 뭔가를 하고자 한 최초이면서 유일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중학교 때 와서는 B형 간염 보균 판정을 받게 되었다. 늘 피곤했고 목욕탕 같은 곳에 가면 쓰러지기도 했다. 이후 오랜 시간 간염은 나를 괴롭히는 내 안의 작은 악마가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중학교에 있는 합창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딱히 하고 싶은 특별활동 부서가 없어서 들어가게 된 것이었는데, 이외로 노래가 정말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졸라 집 근처 음악학원에서 성악 레슨을 두세 달 정도 받기까지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기초적인 발성법이랑 초보 수준의 노래를 몇 곡 배운 것이었는데 그래도 정말 즐겁고 심취해서 열심히 했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노래에 대한 관심이 이어져서 증폭된 곳이 바로 성당이었다. 초등학교 때 세례를 받고 습관적으로 주일학교에 매주 다녔었는데,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서 성당에 가는 일이 더욱 좋아진 것이다. 주일에 미사드리러 가면 성가를 열심히 불렀고, 중학교 3학년 때는 미사 전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어 더욱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 몸도 약하고,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던 소녀에게 ‘특별히 재미있는 일’이 생긴 것이다. 숫기도 없던 내가 학교 수업시간이나 소풍에 가면 다른 학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이상하게도 그것은 떨리지도 않았고 부끄럽지도 않았다.

고등학교에 가서 문과냐 이과냐 진로를 결정할 무렵 나는 성악을 전공하는 음악대학에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부모님께 내 의사를 말씀드렸는데, 그때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몸도 약한 아이가 큰 목소리로 노래하는 성악을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음대에 가려면 대학교수에게 고액의 레슨을 받아야 입학할 수 있는 풍토가 일반화 되었던 터라, 아버지께서는 경제적 부담을 지면서 뒷거래 같은 대학진학을 시키고 싶어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엄격하고 완고한 아버지의 반대를 꺾기에는 그때의 나는 너무나 유순한 사람이었다. 훗날 들으니 내 친구 중에는 음악 시켜달라고 며칠씩 다른 친구 집으로 가출해서 부모님의 반대를 이긴 친구도 있었는데, 순진하고 고지식했던 나는 그 정도의 용기를 부려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슬피 울면서 성악가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반대학 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전공에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학시절에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그때 읽은 많은 책들은 지금까지도 살아가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대학시절엔 학교 방송국 PD로 활동했었는데, 교내에 방송할 음악을 선곡하고 방송할 원고를 직접 썼다. 이때 나는 많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했고 많은 책과 자료들을 읽고 글로 정리했다. 음악을 전공하는 대신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간이었고, 음악 외적인 것에도 견문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간이었다.

대학 시절 나는 가슴 아픈 첫사랑을 경험했다. 1년 정도 남자친구를 만나고 헤어졌는데 실연의 상처는 마음뿐 아니라 몸에도 큰 상처를 가져왔다. 잠을 잘 잘 수가 없어 술에 의지해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이렇게 가슴 속의 슬픔과 술은 건강을 해쳤다. 10여 년 간 보균상태였던 B형 간염이 발병한 것이다. 너무 피곤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멍했고 오후 세 시 정도가 돼야 겨우 머리가 깨서 뭔가를 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었고, 이후에는 간염 때문에 몇 년 간 상당히 오랜 시간을 집에서 요양을 해야 했다. 언제쯤 건강이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었던 막막한 시간이었다.

이 무렵부터 묵주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건강해지고 싶었고, 그리고 믿음이 없던 아버지가 성당에 나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히 들었던 것이다. 묵주의 9일 기도를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성모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아프고 막막하던 나는 뭔가에 의지해야 했고, 기도는 내 마음이 기댈 언덕이었다. 그렇게 54일간의 기도가 끝났고, 또 다시 54일간의 묵주의 9일 기도를 드렸다. 몇 년간 그렇게 묵주의 9일 기도를 했다. 한 가지 지향의 기도가 끝나면, 또 다시 다른 지향을 가지고 기도를 드렸다. 물론 당시에 기도를 했을 때는 모든 기도가 바로 내 지향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건강은 시간이 흐르니 조금씩 좋아져 학생들 국어 과외를 짬짬이 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용돈을 쓰고 저축도 할 만큼 벌 수 있었다. 과외를 하니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서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평일 미사에도 갔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미사를 자주 드리다보니 신앙의 새로운 지향점이 생겼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완전한 믿음을 갈구하게 된 것이다. 몸이 아플 때나 마음의 고통이 올 때나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지켜주신다는 것, 나를 미워하셔서 고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는 그때 그런 믿음을 가지고 싶었다. 스물일곱 살 때였다.

그런데 그때 내가 간절히 완전한 믿음을 보여주신 분이 나타났다. 내가 다니던 해운대 성당에 부임해 오신 권지호 프란치스코 신부님이셨다. 미사에 가면 늘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어떻게 주님께 의탁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사랑을 한없이 베풀어 주시는 햇살 같은 분이라고도 하셨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에 신부님의 그런 강론들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권지호 신부님은 얼마 전에 울산대리구장으로 임명받으셨는데, 그 신부님의 올곧고 완전한 믿음을 생각하면 당연한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몇 년간의 기도와 신앙생활 덕분에 나는 좀 더 정신적으로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도 기도를 시작한 지 몇 년 후에 세례를 받으셨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사에 매주 참여하고 계신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하느님은 기도를 드리면 바로 들어주시는 것도 있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에 적당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주신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도 나는 기도의 지향은 가지지만 주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안다.

스물아홉에 나는 울산 모 방송국 작가 공채 시험에 합격해 울산으로 왔다. 처음으로 매일 출근하는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회생활은 쉽지 않았다. 내가 입사하기 얼마 전, IMF 한파로 많은 이들이 방송국에서 감원된 후라 회사 내 분위기가 살얼음판 같았던 것이다. 서로 시기와 질투로 깎아내리기 바빴고, 다들 삼삼오오 파벌을 만들어 끼리끼리 모였다. 새로 들어온 사람은 무조건 소외되고 따돌림을 당했다.

방송국 작가생활은 외로웠다. 오늘 쓴 원고는 내일 바로 방송되고,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방송으로 결과가 나오는 냉정한 세계였다. 친구도 별로 없었고, 다른 사람들처럼 파벌에 끼여 남을 깎아내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 때 유일하게 위안이 되었던 것이 음악이었다. 마음 붙일 데가 없어서 방송 원고를 쓰면서도 CD플레이어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고, 집에 가서도 자기 전까지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 성악 레슨을 받았던 기억이 났고, 마침 방송국의 코디 언니가 좋은 선생님이 있다고 해서 소개를 받고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내 음악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무섭게 노래 실력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성악 선생님은 매주 늘어가는 실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러던 중 성당의 미사 시간에 옆자리에 앉은 자매분이 내가 성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기도가 된다며 연락처를 달라고 하셨다. 별 생각 없이 명함을 한 장 드렸는데 얼마 뒤에 청년 성가대에서 연락이 왔다. 그래서 청년 성가대에 나가게 되었고, 단원 중에 성인 성가대에 단원을 겸하는 분이 있어서 교중미사에도 함께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성가대의 솔리스트가 되었다. 화답송 성가 독송을 하고 때로는 특송도 불렀다. 그때는 성가대가 재미있고 즐거워서 교중미사 성가대와 청년 성가대를 같이 활동을 했다. 주일에 교중미사와 청년미사 두 번을 가고 미사 전에 한 시간씩 성가 연습까지 했지만 힘들거나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교중미사에 화답송 솔로를 할 때는 토요일 저녁에 성당에 와서 홀로 연습을 했다. 주일에는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 이상 등산을 하고, 성당에 한 시간 일찍 가서 연습을 하고 미사에 임했다. 성악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리 몸을 풀고 연습하지 않으면 아침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을 성가대를 하고 나니 시편 성가 전체를 꿰뚫게 되었다. 악보도 능숙해졌고 음감도 좋아졌다. 더불어 나가기 시작한 가톨릭 합창단도 재미있었고, 거기서도 머지않아 솔리스트가 되었다. 음악과 함께해 행복한 시절이었다. 성악 레슨도 계속해서 받고 있었다.

문제는 직장생활이었다. 그렇게 일단 노래에 심취하기 시작하니 직장생활이 재미가 없어졌다. 귀에는 음악소리만 들렸고 다니기 싫어선지 일 년 내내 몸살이 났다. 병원에 가도 특정한 병명이 없었고 의사는 쉬어야 된다고만 했다. 결국 방송국 작가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든 딸이 방송국을 그만두고 쉬고 있으니 부모님이 보시기에 답답하셨는지 음대 시험을 권유하셔서 석 달 후에 음대 대학원 시험을 보게 되었다. 짧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성모님께 간구하는 마음으로 시험에 임하였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대학원에 합격하게 되었다. 음대 대학원에 들어가게 된 것도 정말 기쁜 일이었는데, 그 무렵 나는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을 받았다. 한 마트에서 주는 자동차 경품에 당첨된 것이다. 아마 내가 성가대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잘 하기 위해 노력한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고 선물로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학원 입학할 무렵에는, 지인이 내가 음대대학원에 들어간 것을 아시고 집에 있던 피아노를 선물로 주셨다. 그래서 나는 많은 악보와 책을 싣고 다닐 자동차와 피아노가 생겨서 시간을 절약하고 집중해서 음악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을 주님께서 알아서 다 준비해 주셨던 것이다.

학부에서 전공을 안 했기 때문에 대학원 공부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대학원은 이론 과목이 많아 학부에서 문학을 전공한 나는 다른 학생들보다 유리한 점이 많았다. 리포트나 발표를 잘 해서 우수한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실기도 다른 학생들보다 몇 배 노력한 결과 졸업연주회를 무사히 마치고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대학원을 졸업한 지 8년이 되어가는 요즘, 나는 여전히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솔리스트이다. 또 평일 미사에서 10년 가까이 반주를 하고 있다. 지금의 남편과도 성가대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 나는 성당에서 음악을 하면서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아마 평생토록 음악 봉사를 해도 하느님께 받은 사랑의 작은 일부분도 되돌려 드릴 수 없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은 음악학원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쳐왔고, 제자들이 많은 대회에서 입상을 하고 대학에도 합격했다.

불혹이 넘으면서 나는 새로운 계획을 몇 가지 세웠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보람 있지만, 하느님이 주신 목소리로 많은 사람에게 위안과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 넘치도록 과분한 재능을 주셨고 큰 사랑으로 음악을 통해 천상의 세계를 알게 해주신 주님의 사랑을 널리 알리고 싶다. 그래서 크로스오버 가수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성가와 노래를 작곡하고 싶다. 한때는 학부에서 음악을 전공하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온 것이 안타까워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문학을 전공한 것이 가사를 쓰고 작곡을 하는 데 더 많은 도움을 준다. 노래와는 다른 분야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노래를 부를 때도 가사의 내용을 되새기고 더 깊은 감성을 표현할 수도 있게 되었다. 돌아서 왔다고 생각했던 길이 시간이 흐르고 되돌아보니 오히려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생각지 못한 다른 방법으로 음악에의 길을 열어주셨다. 사회에서 사람들이 정해 놓은 길을 걸어야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아름다운 목소리로 주님의 사랑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전능하신 분께서 부족한 나를 택하셔서 당신의 도구로 쓰신 크나큰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감사로 늘 가슴이 벅차올라 마음속으로 나는 다짐한다. 내 일생 주님의 사랑을 영원히 노래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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